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남성들만 탈 수 있는 '기계'였다. 어떤 자동차는 '남성만 탈 수 있음'이라는 '경고문'을 붙이고 다녔다. 자동차는 여성이 운전하기에는 위험하고 부적절했다.
도로 사정 때문이었다. 포장도로는커녕, 길바닥은 비만 내리면 진흙탕이 되었다. 그런 길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만 운전해도 흙투성이가 되어야 했다.
게다가 성능도 좋지 않았다. 핸들은 빡빡했다. 핸들을 돌리려면 상당한 완력이 필요했다. 고장도 잦았다. 운전할 때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연기와 냄새를 뿜어댔다. 몸은 기름범벅이 되기도 했다. 자동차는 '말이 끌지 않는 마차'였다. 그런데도 '재갈'조차 물리지 않고 달려야 했다. '승마복'도 없었다. 힘이 약한 여성에게는 아무래도 위험한 '기계'였다.
'모터월드'라는 잡지는 자동차 운전에 관해서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자동차가 조금 보급되자 '운전자 구명상자'라는 것이 판매되기도 했다. 약삭빠른 장사꾼이 개발한 것이다. '구명상자' 안에는 7.5ℓ들이 물 2통, 200g 짜리 고기통조림 4개, 초콜릿 900g, 과일통조림 2개 등이 들어 있었다. 장사꾼들은 운전할 때 입는 '승차복'도 팔아먹었다.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 찰스 패너티 지음>
그러면서도 자동차가 팔린 것은 속도감 덕분이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감정은 거의 전적으로 놀라운 속도감에서 나온다. 자동차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숨어 있는 그 어떤 격정적인 열정에 호소하는 운송수단이다."
과시욕 때문이기도 했다. 가격이 비싼데다 운전까지 힘든 자동차를 몰면서 사회적인 우월감을 과시하려고 들었다. 주로 '간 큰 남성'들이 자동차를 사서 뽐내며 타고 다녔다. 이웃집보다 더 빠른 자동차를 찾았다.
100여 년 전의 자동차는 이랬다. 간이 크지 못하면 몰고 다닐 수 없었다. 자동차는 오늘날처럼 '생활필수품'이 아니었다. 그런데 세월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웬만큼 간이 크지 않으면 자동차를 끌지 못하는 세상이 다시 오고 있는 것이다. 기름값 때문이다.
전국 자동차 등록대수 1,659만 대 가운데 30.1%인 500만 대가 10년 넘은 '낡은 차'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도다. '낡은 차'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니다. 운전자들이 알뜰해졌기 때문만도 아니다. 경기가 나빠서 차를 바꿀 여유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 경기가 풀리고, 그러면 '새 차'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오히려 차를 끌 수조차 없게 되고 있다. 기름값이 무서워서 차를 아예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두고 있는 것이다. 취업포털 커리어 조사에 따르면,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던 직장인 가운데 절반이 넘는 51.5%가 대중교통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승용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는 것은 '추억'이 되었다. 운전자들은 10원이라도 가격이 싼 주유소를 찾아다니고, 그나마 주머니 사정을 따지고 있다. 기름을 아끼려고 예비 타이어까지 떼어놓고 다니고 있다.
운전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화물트럭, 야채트럭들은 멈춰선 채 운행들을 포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꼭 하나 예외가 있기는 하다. '닭장차'다. 기름값이 제아무리 비싸도 '닭장차'만큼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잘 달리고 있다. 이젠 없어졌으면 싶지만 건재하다. '닭장 투어'로 진화까지 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라고 했다. 그 2만 달러를 넘어서 곱절인 '747'까지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기름값 걱정들이다. 그뿐 아니다. '상추처럼 값싼 미국 쇠고기'는 껄끄러워서 못 먹고, 삼겹살은 비싸서 못 먹고 있다. 김영인 기자 (csnews@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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