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가르쳤다?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하지만 사실이다. 정약용은 귀양살이를 하면서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훈(示二子家誡)'이다.
"…조금도 속임이 없어야 한다. 하늘을 속이는 것이 가장 나쁘고, 임금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데서부터 농부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상인을 속이는 데 이르기까지 모두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 속일 게 있다. 바로 자기의 입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식물(食物)로 속이더라도 잠깐 그때를 지나면 되니… 음식을 먹을 때마다 모름지기 이런 생각을 가져라.…"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자신의 입을 속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랬으니 거짓말을 하라고 시킨 셈이다. 물론, 사치스러운 음식을 멀리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정약용의 가르침을 조금 다르게 해석해볼 필요가 생겼다. 입을 속이지 않고는 불안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우병 괴담'과 관련, 정부는 "재협상은 없다"고 했다. 값싸고 맛 좋으니까 미국 쇠고기를 먹으라고 했다.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먹으면 된다고도 했다.
'안전'도 강조했다. "복어의 독을 제거하고 먹는 것처럼 특정 위험물질만 제거하면 안전하다"고 했다. "광우병에 걸려 있는 소로 등심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어도 특정 위험물질만 제거하면 안전하다"는 말도 나왔다.
그랬던 정부가 '재협상'이 아닌 '추가 협의'를 했다. 대통령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청계 광장에서 어린 학생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팠다"며 '사과'까지 했다. 의사들은 시식회를 가졌다.
그러니 이제는 먹을 때가 얼추 되었다. 찜찜하면 입을 속이고 먹으면 된다. 아니면, 눈을 딱 감고 먹거나.
그래도 미국 쇠고기가 껄끄러우면 '안전한' 한우고기를 찾으면 된다. 그렇지만 '유명 고깃집'은 안 된다. 미국 쇠고기를 한우고기로 속여서 팔기 때문이다. 갈비에 미국 쇠고기를 덧붙여서 팔다가 들통났다는 보도다. 한우고기를 먹을 때에도 입 속일 각오를 단단히 해두는 편이 낫다.
언젠가는 꽁치통조림에서 기생충이 나왔다. 그러자 희한한 해명이 있었다. "충분히 익혀진 것이기 때문에 인체에는 무해하지만 회수하겠다." 소비자들은 꽁치통조림을 먹을 때 구역질하는 입을 속일 수밖에 없다.
'생쥐머리 새우깡'과 관련해서도 어떤 장관이 "생쥐를 튀겨먹으면 좋다"고 했다. '생쥐머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혐오식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장관이 '좋다'고 했으니 좋다. 그 대신 입을 속이며 억지로 삼켜야 할 것이다.
닭고기도 마찬가지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닭고기, 오리고기는 철저한 검역을 거쳤기 때문에 조류 인플루엔자(AI) 감염 위험성이 없다고 했다. 더구나 익혀먹으면 아주 안전하다고 했다. '닭고기 먹는 날'이 지정되고, '시식행사'까지 열리고 있다. 입만 속인다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고기다. 한 번만 속이면 될 수도 있다. 먹어보고 무난하면 더 이상 속일 필요가 없어진다. 유전자를 조작한 옥수수가 빵이나 과자 등에 섞여서 판매될 것이라고 한다.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은 옥수수는 값이 비싸고, 그나마 구하기도 어려워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랬으니 먹을 수밖에 없다. 다소 불안하지만 역시 입만 속이면 된다. 식품당국은 불량식품을 열심히 회수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1·4분기 동안 불량·위해 식품으로 판정되어 회수명령이 내려진 식품 가운데, 실제 회수된 것은 3.25%에 불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중에는 회수율이 '제로'인 품목도 있었다. 회수되지 않은 것은 소비자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소비자들의 입은 이미 속고 있었다.
한강 둔치에서 자생하는 봄나물에서 기준치 이상의 중금속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한 네티즌이 투덜거렸다. "미친 소도 먹는데, 그따위쯤이야." 그 네티즌은 진작부터 입 속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영인 기자 (csnews@cs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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