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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의 수난..자동차 '먹이'에 유전자까지 조작

올소맨 2008. 5. 20. 17:00

'세상의 동쪽'을 찾아간 콜럼버스는 그곳 사람들이 쌀 농사를 지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쌀은 없었다.  그 대신 난생처음 보는 곡식을 '발견'했다.  키가 큰 곡식이었다.  맛이 그럴 듯했다.  기록을 남겼다.  "이 곡식은 맛이 좋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이것을 먹고산다."  옥수수였다. 


 

1517년 스페인 사람들이 오늘날의 멕시코에 도착했다.  콜럼버스가 맛좋다고 한 옥수수를 또 '발견'했다.  끝없는 들판에 가득했다. 


 

옥수수는 불과 90일이면 완전히 여물었다.  기르는 것도 쉬웠다.  괭이로 홈을 파고 낟알을 2개씩 넣은 뒤 흙으로 덮어주면 그만이었다.  쟁기질도 필요 없었다.  원주민들은 쟁기라는 것을 몰랐을 뿐 아니라, 그곳에는 쟁기를 끌도록 할 동물도 없었다. 

비료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새의 배설물을 긁어모아서 슬슬 뿌려줬다.  그러면 옥수수는 저절로 자랐다.  스페인 사람들 눈에는 원주민이 '농부'처럼 보이지 않았다.  '원예사'처럼 보였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굶는 게 '다반사'였다.  그들의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곡식으로는 도저히 배를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원주민들은 굶주림이라는 게 뭔지 모르고 있었다.  빨리 여물고, 기르기 쉬운 옥수수 덕분이었다.  옥수수는 훌륭한 '식량'이었다. 


 

그런데도 유럽 사람들은 훌륭한 '식량'을 기피했다.  옥수수는 야만인의 식량이었고 이교도의 식량이었다.  이교도와 똑같은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다.  밀을 주식으로 하는 입맛에는 잘 맞지도 않았다.  옥수수를 볶을 때 나오는 기름이 껄끄럽게 느껴졌다. 


 

옥수수는 유럽으로 전해졌지만 '찬밥'이었다.  더욱 동쪽으로 전해져 터키까지 가서야 겨우 식량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옥수수는 터키 사람들의 '식량'이 되었다. 


 

나중에 터키 사람들이 키운 옥수수가 유럽으로 '역수입'되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를 '투르크의 옥수수'라고 불렀다.  원산지를 터키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옥수수는 '찬밥'이었다. 


 

아일랜드에서 이른바 '감자병'이 유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감자병'이 발생하자 영국은 10만 파운드의 옥수수 가루를 아일랜드에 긴급 지원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국이 우리에게 옥수수를 먹여 독살하려고 한다"며 먹으려 하지 않았다.  옥수수를 먹으면 피부가 까맣게 변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신대륙'에서는 옥수수가 더욱 수난 받았다.  가축의 먹이로 전락한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원주민의 훌륭한 식량'인 옥수수를 돼지에게 먹였다.  '돼지고기 공화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돼지를 많이 키웠다.  미국 사람들의 주식은 빵이 아니었다.  돼지고기였다. 


 

'돼지=농축 옥수수'였다.  인류 역사상 고기를 얻기 위해 그렇게 많은 곡물을 소비한 적은 없었다.  미국의 남부지방에서는 농민들이 채찍으로 돼지를 때리며 사육했다.  그래서 그들을 '크래커(cracker)'라고 했다.  그만큼 돼지를 많이 길렀다.

 

도시에서는 돼지고기 파는 집이 줄을 이었다.  돼지고기 굽는 연기가 온 도시를 덮었다.  쇠고기 소비량이 돼지고기를 능가하게 된 것은 20세기가 절반 가량 지나서부터였다.  햄버거가 소비량 역전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찬밥'이었던 옥수수는 결국 자동차의 먹이로 또 한 차례 수난 당하고 말았다.  '바이오 에너지'다 뭐다 하면서 옥수수를 자동차 연료로 쓰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동물 먹이로나 사용했던 옥수수였으니 별로 아깝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가 했더니 유전자마저 조작 당하고 있다.  그 조작된 옥수수가 이제는 우리 입 속으로 들어오게 생겼다.  '유전자 변형 옥수수'다.  전분과 빵, 과자, 빙과류 등에 첨가될 것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이 발끈하고 있다.  불매운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은 먹게 될 것이다.  '미친 소'를 먹는 것처럼. 

 

김영인 기자 (csnews@c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