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그랭거라는 소년이 '긴급체포'되었다. 하인노릇을 하는 17살 먹은 소년이었다. 혐의는 '수간(獸姦)'이라고 했다. 주인집에서 기르는 동물과 '관계'를 가졌다는 혐의였다. 조사 결과, 토머스는 암말, 암소, 암양, 암송아지 등 동물들과 여러 차례에 걸쳐 '관계'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관이 '관계'를 가진 동물의 '인상착의'를 밝히라고 명령했다. 소년은 명령에 따라 '인상착의'를 줄줄 털어놨다. 하지만 인상착의만으로는 동물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놈이 그놈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혐의가 있는 동물을 모조리 출두하도록 했다. 그 중에서 '관계'를 가진 동물을 소년에게 직접 골라내라고 명령했다. 암말 1, 암소 1, 염소 2, 암양 5, 암송아지 2, 칠면조 1마리 등 모두 12마리나 되었다.
소년과 동물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동물들은 소년이 보는 앞에서 한 마리씩 처형되었다. 소년과 '관계'를 가졌던 순서대로 처형되었다. 소년에게는 '성경'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허용했다.
죽은 동물은 모두 한 구덩이에 파묻혔다. 사람들이 '죄지은 동물'을 가져가서 식용으로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죄지은 동물'의 고기는 먹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의 잣대로 진행된 일방적인 '동물재판'이었다. 동물들은 영문도 모르고 죽어야 했다. 1642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동양에서도 '동물재판' 비슷한 것이 있었다. 중국 한나라 때 장탕(張湯)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장탕이 어린 시절, 그의 부친이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집에 보관 중이던 고기가 없어지고 말았다. 부친은 장탕의 짓이라며 꾸짖고 회초리로 때렸다.
억울하게 매를 맞은 장탕은 부친이 보는 앞에서 쥐구멍을 파헤쳤다. 숨어 있던 쥐를 끌어냈다. 쥐가 먹다 남긴 고기도 증거물로 '압수'했다.
장탕은 마당 한구석에 쥐와 증거물인 고기를 놓고 재판을 열었다. 판결문을 낭독한 후 쥐를 책형에 처했다. 몸뚱이를 찢어버리는 형벌이었다.
부친은 그런 장탕의 행동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어린아이가 제법이었다. 부친은 장탕의 판결문을 자세히 읽어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어린아이가 쓴 판결문인데도 나름대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완벽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장탕은 이후 훌륭한 관리로 성장했다.
어쨌거나, 장탕의 '동물재판'도 인간의 잣대에 의한 것이었다. 쥐는 고기 몇 점을 훔쳐먹은 '죄'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래도 옛날에는 동물을 죽일 때 이처럼 '재판'이라는 형식을 밟기도 했다. 오늘날의 인간은 그런 것조차 없다. '살처분'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동물을 대량학살하고 있다. 동물은 떼죽음 당하고 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구덩이에 파묻히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살처분' 당한 닭과 오리가 그 사이에 680만 마리에 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고(高) 병원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꺼번에 '몰살' 당한 것이다. AI가 나라 전체로 퍼졌다니 앞으로도 더욱 많은 숫자가 '살처분' 당할 것이다.
'동물보호법'이라는 것을 인터넷에서 뒤져보면, 동물에게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 등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살처분' 당한 동물은 아마도 같은 종류의 동물이 보는 앞에서 무자비하게 '살처분' 되었을 것이다. 동물은 끔찍하게도 자기 가족과 친구 앞에서 죽어가고 있다.
'마령단(馬靈壇)'이라는 게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경상도에서 세금으로 바치는 쌀을 말에 싣고 조령 고개를 넘었다. 가파른 고개를 넘는 바람에 말의 고생이 심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말이 죽었다. 사당을 지어 그 죽은 말의 영혼을 위로한 것이 '마령단'이었다.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무더기로 '살처분'하고 파묻어 버리면 그만이다.
김영인 기자 (csnews@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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