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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쇠고기 식단’을 공개하면...

올소맨 2008. 5. 9. 12:17

"짐(朕)은 배가 터지게 먹고 있다.  그대들 신민(臣民)은 굶어죽어라."   

  

일본의 성난 노동자들이 왕궁 앞으로 몰려가 이런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하늘처럼 받들던 '천황'을 향해 감히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일본은 끔찍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암시장에서는 주먹밥 3개가 10엔이었다.  고구마는 5개가 5엔이었다.  쌀은 돈을 가지고도 구하기 힘들었다.  신발은 한 켤레에 100원이나 했다.  


 

30대 노동자의 월급은 200엔에 불과했다.  한끼에 주먹밥 1개로 버틴다고 해도 한 달에 열흘 동안은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그 쥐꼬리 월급으로 가족까지 부양해야 했다.  먹고살 재간이 없었다.  


 

결국 배고픔을 참지 못한 노동자들이 패전 이듬해인 1946년 5월 1일 소위 '천황의 황거(皇居)' 앞에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아기를 업은 '몸뻬' 차림의 가정주부와 군복을 입은 퇴역군인들도 시위에 합세했다.  시위대는 "암거래를 없애라", "'천황'은 전범이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자기들의 임금을 맹렬하게 성토했다.  


 

5월 12일에는 구민(區民) 대표 200여 명이 트럭 두 대를 나눠 타고 왕궁으로 몰려갔다.  "'천황'을 만나자", "인민의 소리를 들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하늘같은 '천황'이 하찮은 백성을 만나줄 리가 없었다.  


 

마침내 시위대 속에서 "'천황'의 식당을 공개하라"는 함성이 나왔다.  시위대는 '궁내성' 지하 1층에 있는 조리실로 몰려갔다. 

 

 

하지만 조리실은 직원 식당용이었다.  그래서인지 시위대의 생각처럼 사치스러운 식료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본 사람의 변명, 시오다 마치오 지음>


 

광우병 파문과 관련, 뒤적거려본 일본의 '과거사'다.  굶주린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 임금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확인이라도 해보려고 했었다.  일본 임금이 "짐도 배가 고프다"며 미리 식당을 공개했더라면 시위대가 몰려가는 일은 아마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과거사'를 오늘날 우리가 발전적으로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대통령이 청와대 식탁을 공개, '값싸고 맛있는 미국 쇠고기'로 구성된 식단을 국민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30개월 넘는 쇠고기' 식단이라면 금상첨화다.  프로그램이 못마땅하다던 TV를 통해 공개해도 무난할 것이다.  


 

그럴 경우,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 먹으면 된다"고 말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대통령의 솔선수범을 확인한 국민이 너도나도 안심하고 '미친 소'를 먹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위험이 '현저하게' 높아지더라도 '재협상'을 추진하거나 수입을 중단할 필요도 없다.  미국 쇠고기 수입이 저절로 늘어나고 통상마찰을 비켜갈 수 있다.  FTA를 완전 타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국군 장병과 학생들에게 급식하지 않겠다는 말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대통령이 국군 장병과 같은 음식을 먹으니 군의 사기가 높아질 수 있다.  '가난했던'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와서도 비싼 한우가 아니라 '값싼 쇠고기'를 먹는 것을 보면 뚝 떨어졌던 지지도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탄핵 서명운동, 촛불시위, 청문회 따위는 없었던 일이 되고 대통령 홈피에는 다시 존경하는 글이 넘치게 된다.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삼조', '일석사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삶은 옥수수를 곁들이면 더더욱 좋다.  이른바 'GMO식품'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씻어버릴 수 있다.  AI에 대한 불안감도 고려, 삶은 달걀과 익힌 닭고기, 오리고기도 식탁에 올릴 필요가 있다.  가열처리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여당의 심재철 수석부대표도 가끔 참석시켜 쇠고기 등심스테이크를 함께 즐길 필요가 있다.  한층 더 신뢰감을 줄 수 있다.  혹시 '쇼'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식단을 공개하면 비아냥거림도 사라질 것이다.  갈라졌던 '국론'도 다시 합쳐질 수 있다.  더 이상 왈가왈부하고, 쑥덕거릴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김영인 기자 (csnews@c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