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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군의 소', 대통령 홈피를 점령하다

올소맨 2008. 5. 2. 20:39

아득한 서쪽에 튀로스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의 임금은 벨로스였다.  벨로스에게는 디도라는 딸이 있었다.  디도는 시카이오스라는 돈 많은 재벌과 결혼했다.  권력자의 딸인 공주와 재벌 사이의 결혼이었으니 깨가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벨로스가 죽고 디도의 오빠 피그말리온이 임금자리를 차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피그말리온의 욕심 때문이다.  

 

 

피그말리온은 자기 매제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던 끝에 결국 시카이오스를 살해하고 말았다.  디도는 오빠를 피해 몇몇 사람과 함께 튀로스를 탈출해야 했다. 


 

디도의 배는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 도착했다.  디도는 그곳 주민들에게 통사정을 했다.  이곳에서 살고 싶으니 땅을 조금만 나눠달라고 했다.  소 한 마리의 가죽으로 둘러칠 땅이면 충분하다고 애원했다. 


 

주민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허락했다.  디도는 허락을 받아내자마자 사기꾼으로 '변신'했다.  소 한 마리의 가죽으로 땅을 둘러쳤지만, 소가죽을 잘게 잘라 이어 붙여서 넓게 둘러친 것이다.  디도는 그 넓은 땅에 성을 세웠다. 


 

그 성 이름을 비루사라고 했다.  비루사는 소가죽이라는 뜻이다.  이 성을 중심으로 카르타고가 건설되었다.  디도는 카르타고의 여왕이 되었다. 


 

디도는 불과 소가죽 하나로 비루사를 차지했다.  소 한 마리로 그렇게 넓은 땅을 차지한 적은 아마도 없었다.  '소=땅따먹기'였다.  '소=점령군'이었다.


 

세월이 한참 흘러, 16세기가 되었다.  서양의 뱃사람들이 어떤 섬에 상륙했다.  뱃사람들은 이곳에서 디도의 흉내를 냈다.  주민들에게 소 한 마리의 가죽으로 둘러칠 수 있는 땅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 땅에 집을 짓고 살겠다고 했다.  주민들은 순박했다.  그 정도쯤이야 하면서 선뜻 허락했다. 


 

뱃사람들은 디도처럼 소가죽을 잘게 잘라서 이어 붙였다.  빙 둘러치니 '엄청' 넓은 땅이 되었다.  주민들이 항의했지만, 분명히 소 한 마리만큼의 넓이밖에 되지 않는다며 되레 삿대질을 했다.  뱃사람들도 사기꾼이었다. 


 

뱃사람들은 디도처럼 그 땅에 성을 쌓았다.  대포까지 설치했다.  그 대포를 주민들에게 겨눴다.  섬 전체를 점령해버렸다.  그 땅을 스페인 왕자 필립 2세의 땅이라고 선언했다.  오늘날의 필리핀이었다. 


 

뱃사람들 역시 소가죽 하나로 '봉'을 잡았다.  소 한 마리로 나라 하나를 빼앗은 적은 아마도 없었다.  그 소는 땅따먹기 소, 점령군의 소였다.  뱃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디도의 '유전자'가 녹아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서양 사람들은 신기한 곡식도 함께 '발견'했다.  키가 큰 곡식이 끝없는 벌판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옥수수였다.  옥수수는 훌륭한 식량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옥수수가 껄끄러웠다.  밀을 주식으로 하는 입맛에는 '별로'였다.  게다가 옥수수는 '이교도'의 식량이었다.  이교도와 똑같은 것을 먹기는 싫었다.  그들은 옥수수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간단했다.  소에게 먹이고 자기들이 그 고기를 먹으면 되는 것이다. 


 

소는 원주민의 식량을 먹으며 숫자가 '껑충' 불어났다.  아메리카에는 '점령군의 소'가 넘치게 되었다.  아무리 배터지게 잡아먹어도 고기가 남아돌았다. 


 

그들은 남아도는 고기를 팔아 돈을 벌기로 했다.  자유무역을 하자며 '영원한 우방'에게 시장개방을 요구했다.  그 이익이 짭짤했다. 


 

하지만 그 정도 이익으로는 모자랐다.  소를 더 팔아야 했다.  살이 빨리 오르도록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식사료를 섞어서 먹였다.  살코기만 팔아 가지고는 부족했다.  뼈다귀에 붙은 고기까지 팔겠다고 생떼를 썼다.  '영원한 우방'은 백기를 들어야 했다. 

 

점령군의 소는 이제 '영원한 우방'의 식탁을 마음놓고 점령하고 있다.  축산농가의 농심도 점령하고 있다.  


 

점령군의 소는 마침내 '영원한 우방' 대통령의 '미니 홈피'를 점령했다.  그 미니 홈피에 적혀 있던 수만 개의 '비난 글'까지 삼켜버렸다.  '영원한 우방'의 소비자는 영원한 '봉'이 되고 있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