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삼성그룹은 반쪽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사업에 손을 대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이 '첨단산업'을 통해 변신하지 못하면 그룹 자체는 물론이고 나라의 장래까지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했다. '장고' 끝에 1983년 3월 15일을 기해서 반도체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유명한 '도쿄 구상'이었다.
'도쿄 구상' 당시 이 회장은 70대의 노인이었다. 남들은 이미 은퇴하고도 지났을 연령이었다. 그런 노인이 과감한 결심을 했고, 그룹의 운명을 건 모험을 했다. 대단한 '벤처 마인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반도체사업은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양산체제를 갖추어 놓으니까 일본기업이 덤핑 공세를 펴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어려움을 극복했다. 삼성그룹은 반쪽 나지 않았다.
10년 후인 1993년, 삼성그룹의 후계자인 이건희 회장이 미국 출장을 갔다. LA시내의 백화점과 상가에서 전자매장을 둘러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진열대를 아무리 살펴봐도 '삼성전자' 제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답답해진 이 회장이 한 점포의 점원에게 삼성전자 TV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점원은 한참동안 매장을 뒤지더니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TV를 겨우 찾아냈다.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먼지만 잔뜩 쌓여 있었다. 워낙 팔리지 않는 바람에 삼성전자 제품은 '찬밥' 신세였던 것이다.
이 회장은 '아뿔싸'했다. 위기였다. 달라지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서울로 연락을 해 관련 임원 23명을 긴급 소집했다. 그리고 '장장' 8시간 30분 동안 현지에서 회의를 열었다.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며 임직원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마침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등 기업이었던 일본의 소니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오늘날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8%, 상장기업 전체 시가총액의 20%,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그룹에 납품하는 중소기업까지 합친다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다.
과감한 결심과 발상의 전환이 없었더라면, 삼성그룹은 반쪽은커녕 반의 반쪽도 남지 못했을지 모를 일이다. 운이 좋아서 정상에 오른 게 아니다.
그런 삼성그룹에게 지금 돌아오고 있는 것은 '반(反) 기업정서'다. 최고경영진을 겨냥한 반기업정서다. 성공한 기업에 대한 찬사는 극히 적다. 언젠가는 삼성그룹 사옥의 '꼭대기 층'을 칼로 찌르는 만평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이 회장의 퇴진을 발표했는데도, 영향력을 계속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후계자 시비도 여전하다.
삼성그룹이 여러 가지 탈법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반기업정서'가 심해지면, 기업들은 골치 아픈 국내에서 벗어나 영업기반을 해외로 옮겨버리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제조업 공동화를 부채질하게 된다. 기업을 해보려던 사람마저 의욕을 잃고 포기하려고 한다. 외국기업도 국내 투자를 꺼리게 된다. 일자리 얻기가 더 어려워지고, 나라 경제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정부에게도 어려움이 닥친다. 세금이 덜 걷혀 나라 살림이 어려워진다. 공무원 월급조차 주기 힘들게 된다.
삼성그룹이 거꾸러지기를 바라고 있는 해외의 경쟁업체들은 입을 귀밑까지 찢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삼성 타도의 기회'라며 벼르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회장의 퇴진을 계기로 삼성그룹이 아무래도 예전보다 주춤하게 될 것이니, 이번 기회에 삼성그룹을 타도하자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는 '친(親) 기업'을 하겠다고 했다. '프렌들리'라고 했다. 경제를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명박 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프렌들리'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반기업정서'를 해소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프렌들리'도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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