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건륭제가 즉위 60주년을 맞았다. 25세 때 황제 자리에 올라 60년이나 나라를 통치한 것이다. 나이도 어느덧 85세가 되었다. 건륭제는 고령인데도 정정했다. 그렇지만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할아버지인 강희제의 연호가 61년으로 그쳤는데 내가 이를 넘어설 수는 없다. 지금 물러나지 않으면 할아버지에게 죄송스럽다."
중국 사람들은 증조부부터 손자에 이르는 5대가 한 집에서 사는 것을 '오세동당(五世同堂)'이라며 최고의 행복으로 쳤다. 건륭제도 자신이 '오세동당'의 복을 받았다고 자랑해왔다. 천하의 황제 노릇을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했고, '오세동당'의 복까지 누렸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건륭제는 15번째 왕자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에 따라 가경제가 즉위했다. 자신은 태상황제로 물러앉았다.
건륭제는 태상황제가 되고도 4년을 더 살았다. 1799년에 89세로 사망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오래 사는 사람은 별로 많지 못하다. 당시에는 더욱 그랬다. 건륭제는 대단히 장수한 황제였다.
그 건륭제가 사망하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 기윤이라는 대신이 궁중에서 건륭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윤은 건륭제가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자 지루하고 짜증이 났다. 줄담배를 피우며 투덜거렸다.
"노두아(老頭兒)가 오늘은 왜 이리 늦을까."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건륭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호통을 쳤다.
"노두아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기윤은 식은땀을 흘렸다.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리며 변명을 늘어놨다. 아마도 말을 더듬었을 것이다.
"노(老)는 만수무강하는 것을 말하고, 두(頭)는 하늘을 받들고 땅에 서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여기는 것을 아(兒)라고 합니다."
'노두아'는 늙은이를 깔보고 무시하는 말이다. 중국 사람들은 '노두아'를 '라오터우얼'이라고 발음한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노털'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도 늙은이를 '노털'이라고 비하하는 말을 쓸 때가 있다. 국어사전을 들여다보면 '노털'이 아니라, '노틀'이 표준말이라고 되어 있다.
기윤은 감히 황제보다도 더 높은 태상황제를 나라의 어르신이 아닌 '노털'이라고 무시한 것이다. 그 말을 마침 태상황제가 들었으니, 목이 10개가 있다고 해도 남아나지 못할 '불경'이었다.
영화배우 최민수가 노인을 노인으로 대하지 않고, '노털 취급'했다가 혼이 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치판에서 노인들을 비하하는 발언이 가끔 나와서 물의를 빚더니 이번에는 영화배우다.
보도에 따르면 최민수는 큰 실수를 했다. 노인을 폭행한 것도 잘못인데, 그 노인을 차에 매단 채 수십 미터나 달렸다고 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힘없는 노인을 흉기로 위협까지 했다는 보도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최민수는 검도 4단인 무술의 고수라고 한다. 프로필에 대한검도회 홍보대사로 되어 있다. 호신술이 주특기라고 밝히고 있다. 그 정도라면 막대기를 들어도 '살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흉기를 들이댄 것이 사실이라면 끔찍하지 않을 수 없다. 최민수는 무술을 잘못 익혔다.
영화배우는 공인이다.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끌고, 주목받는 공인이다. 최민수는 공인으로서도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아이들이 흉내내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이다.
'수즉다욕(壽則多辱)'이라고 했다. 아들이 많으면 걱정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귀찮은 일이 많아지고, 장수하면 욕된 일이 많아진다고 했다. 오래 살다보면 좋지 않은 일을 많이 겪게 된다는 말이다. 영화배우에게 난데없이 '노털 취급'을 당한 노인이 병상에 누워서 수즉다욕을 떠올리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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