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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 도둑'과 '도둑의 도(道)'

올소맨 2008. 4. 21. 12:06

도척이라는 전설적인 도둑이 있었다.  수천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사람의 생간을 꺼내먹는 무서운 도둑이었다. 

 

성인인 공자가 이 도척을 만나 타일러보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그 무서운 도둑을 혼자 찾아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믿을 만한 제자 두 명을 골랐다.  한 명에게는 수레 운전을 맡기고, 또 한 명은 옆 좌석에 앉혔다. 


 

도척은 생간을 씹다 말고 떫다는 표정으로 공자를 만나줬다.  공자의 말씀을 듣기는커녕, 도리어 공자를 도둑이라고 꾸짖었다.  공자는 본전도 찾지 못하고 도둑의 소굴에서 도망치듯 물러 나와야 했다. 


 

어느 날, 한 부하가 이 살벌한 도척에게 질문했다. 


"도둑에게도 도(道)라는 게 있을까요."

도척이 대답했다. 


"물론 있다.  세상에 도가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지금부터 자세히 가르쳐줄 테니 귓구멍을 후비고 잘 들어라."

도척은 자신의 '전공분야'를 줄줄 읊었다. 


"도둑의 5가지 도는 ① 도둑의 성(聖) ② 도둑의 용(勇) ③ 도둑의 의(義) ④ 도둑의 지(智) ⑤ 도둑의 인(仁)을 말한다. 이 5가지 도에 정통하지 못하면 이름난 도둑은 절대로 될 수 없다."

도척은 그러면서 5가지 도를 조목조목 해설했다. 


 

① '도둑의 성(聖)'은 남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는 재간이다.  훔칠 만한 물건을 미리 정해놓고 도둑질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아무것이나 훔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지금 어떤 도둑이 인터넷 거래사이트 '옥션'에서 멀쩡한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훔쳤다.  그것도 무려 1,081만 명의 것을 훔쳤다.  닥치는 대로 도둑질한 것이다.  사람의 개인정보라는 것은 재물이 아니다.  도둑이란 자고로 재물에만 손을 대는 법이다.  그 해커는 '도둑의 성'을 모르는 한심한 도둑이다. 


 

② '도둑의 용(勇)'은 남보다 먼저 훔치는 것을 말한다.  '옥션'을 도둑질한 해커는 '용'도 갖추지 못한 도둑이다.  보도에 따르면,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명의도용 사건이 있었고, 은행, 전자회사, 홈쇼핑 등이 줄줄이 정보를 도둑맞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랬으니 해커 도둑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서 도둑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못난 도둑이다. 


 

③ '도둑의 의(義)'는 도둑질한 재물을 가지고 나올 때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을 말한다.  해커 도둑은 이 '의'에도 해당될 수 없다.  무거운 재물이라도 훔쳐서 맨 나중에 나왔다면 '의'가 있는 도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커 도둑은 무거운 재물에는 손도 대지 못하는 좀도둑일 뿐이다. 


 

④ '도둑의 지(智)'는 알맞은 때를 노리는 것이다.  도둑질에도 때가 있다.  아무 때나 하면 안 된다.  해커 도둑은 보안이 허술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옥션'에서 도둑질을 했다.  도대체 시도, 때도 없는 도둑이다. 


 

⑤ '도둑의 인(仁)'이란 도둑질한 재물을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좋은 도둑(?)'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해커 도둑은 애당초 나눌 수 없는 것을 훔쳤다.  사람 이름, 아이디, 주민등록번호, 관련 거래자료 따위를 무슨 수로 나눌 것인가.  고작해야 다른 도둑에게 팔아 넘기려고 할 것이다. 


 

도척이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옥션' 도둑은 '도둑의 도'를 모르는 도둑이다.  그러니 무모한 도둑이다.  아마도 절대로 이름난 도둑은 되지 못할 도둑이다.  기껏해야 좀도둑이나 할 도둑이다."

도척은 '도둑의 도'를 열심히 들어준 부하가 기특했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 세상에는 부족한 도둑이 많다.…그런데도 그런 도둑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잘못이다.  나는 죽을 때 쇠몽둥이를 가지고 묻힐 작정이다.  저승에서 그들을 만나 머리를 때려 죽여버리겠다." 

해커 도둑은 이제 야단났다.  저승에서도 도척을 피할 수 없게 생겼다.  '옥션'도 야단났다.  도둑질을 당하고도 시치미를 뗐다가 집단소송을 당하게 생겼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