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포라는 사람이 머슴에게 너무 심하게 굴었다. 잠시도 쉬지 못하도록 들볶았다. 잡다하게 시키는 일이 '소털같이' 많았다. 게다가 잔소리는 '모기 날개소리처럼' 앵앵거렸다. 머슴의 얼굴은 항상 눈물과 콧물로 얼룩지고, 턱과 가슴을 적셨다.
그래서 나는 머슴에게 너그럽게 대해줬다. '고용계약'을 하면서 머슴이 할 일을 조목조목 나열하되, 가급적이면 편하도록 해줬다. 마당 쓸고, 밥 짓고, 밭일을 하더라도 춘하추동으로 나누어서 하도록 했다. 하루아침에 모두 해치우도록 혹사하지 않았다.
배고프면 술이나 떡도 마음대로 먹도록 허락했다. 다만 취해서 자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먹으라고 충고했을 뿐이다. 심부름을 시켜도 힘들지 않도록 10리나 5리 정도의 가까운 거리만 다니도록 했다.
머슴은 고마워서 머리를 방아찧듯 찧으며 연거푸 절을 했다. 주인의 은혜에 감사했다. 난쟁이나 절름발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만약에 일을 게으르게 하면 곤장을 쳐달라고 자청하기도 했다. 머슴은 일을 잘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머슴의 행동은 말과 달랐다. 행동이 말을 따르지 못했다. 마치 벼슬을 얻고 나면 일을 하지 않는 선비 같았다.
머슴은 아침을 먹고 제멋대로 나가서 저녁밥 먹을 때나 되어서야 돌아왔다. 저자거리를 싸돌아다니며 술을 질탕하게 마시고 나무그늘에서 코를 골았다. 핑계와 거짓말만 일삼았다. 온순한 말로 타일렀지만 들을 때뿐이었다.
나는 참다못해 화를 냈다. 머슴을 불러 세워놓고 꾸짖었다.
"정승과 판서가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도둑질한다면 쫓아내서 백성을 위로해주지 않을 수 없다. 고을을 다스리는 사또가 양민을 등치는 자들을 뿌리뽑지 못하고, 재물에 눈이 어두워 임금의 걱정을 덜어주지 못한다면 파면시켜서 백봉?피와 땀을 더 이상 짜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네놈은 한갓 부엌데기 머슴이 아니냐. 네가 받은 새경을 돌려보내고 외람되이 먹는 일이 없도록 하라."
쫓겨나게 된 머슴은 눈물과 콧물을 '가을 소나기처럼' 흘렸다. 왕포는 일을 혹독하게 시키는 바람에 머슴의 얼굴을 눈물과 콧물로 얼룩지게 했다. 반면 나의 머슴은 일을 너무 하지 않아서 눈물과 콧물로 턱을 적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쓴 '출동문'이라는 글에 나오는 얘기다. '출동문'은 머슴을 쫓아내는 이유를 적은 글이다. 머슴을 꾸짖으면서 정승, 판서 등 높은 사람까지 싸잡아서 질타한 글이다. 나라를 위해서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맹세를 하고도 못된 짓이나 하는 나쁜 관리들을 비판한 글이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많은 머슴이 탈락했다. 간판급, 스타급 머슴이 여럿 탈락했다. 대권주자 머슴이 탈락했다. 실세 머슴, 측근 머슴, 핵심 머슴, 당대표 머슴, 친노 머슴, 386 머슴도 제법 탈락했다. 모두 머슴의 주인인 국민의 뜻이었다. 국민은 일부 머슴에게만 '재계약'을 허용했다. 그리고 새 머슴을 뽑았다. 물갈이를 했다.
탈락 이유는 간단했다. 머슴이 머슴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머슴이 자기 역할을 외면하고 되레 주인에게 큰소리를 치고 삿대질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계약' 당시에는 오로지 일만 열심히 하겠다고 허리를 굽히고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나라 경제를 살리겠다고 '계약'하더니 오히려 나라 살림을 어렵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일을 팽개치고 자기들끼리 싸움질이나 일삼았기 때문이다.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국민이 새 머슴을 뽑은 이유는 뻔했다. 새 머슴은 종전의 머슴처럼 나태하게 일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일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실망한 나머지 또 머슴을 갈아치울 것이 분명하다. 다시는 그런 머슴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머슴은 벌써부터 우쭐하고 있다. 자기 능력이 뛰어나서 머슴으로 뽑힌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주인을 잊고, 신분을 망각하고 있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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