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어느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꼬마들이 강가에 놀러나갔다가 사람의 뼈와 해골을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무려 24∼26명의 것으로 보이는 인골(人骨)이 강바닥에 파묻혀 있었다. 모두 젊은 사람의 뼈로 판명되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오리무중이었다.
실마리는 우연하게 풀렸다. 실종된 아이를 찾아 헤매던 어머니가 어떤 아이의 옷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아이가 잃어버린 자기 아이의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추궁 결과, 하르만이라는 사람이 선물로 준 옷이라고 했다. 경찰은 곧바로 하르만을 덮쳤다.
하르만은 좀도둑을 경찰에 신고, 상금으로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직업이 경찰의 끄나풀이었다. 하르만은 그 희한한 직업을 '인간 사냥'에 써먹었다. 기차역 주변에서 일거리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샌드위치와 맥주를 먹이면서 유혹한 뒤 무참하게 살해한 것이다. 젊은이들은 하르만의 교묘한 친절에 넘어가 목숨을 잃어야 했다.
하르만은 살해한 젊은이들의 인육(人肉)을 능숙하게 가공했다. 양념을 하고 포장까지 해서 돼지고기, 송아지고기라며 시장에 내다 팔았다. 하르만의 숨은 직업(?)은 '사람고기 판매업'이기도 했다.
사건 전모가 밝혀지자 시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 고기를 구입해서 먹은 시민들의 충격이 가장 컸다. 그렇다고 드러낼 수도 없었다. 몰래 구역질을 하며 토하거나, 먹다 남겼던 고기를 내다버리고 시치미를 떼야 했다.
TV라는 것은 없던 시절이었다. 사건은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관심 있게 읽은 독자들은 또 다른 충격을 받아야 했다. 하르만의 인상 때문이었다. "광채 없는 눈, 코밑 수염, 잔인하고 신경질적인 입매, 두툼해서 천박해 보이는 콧날... "
하르만의 생김새는 바로 히틀러였다. '골상(骨相)'이 히틀러와 정확하게 '붕어빵'이었던 것이다. 전형적인 '살인마의 골상'이었다.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는 강력사건 범인의 얼굴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지만, 국민은 알 수가 없다.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마스크로 가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산 초등학생 납치사건 용의자의 경우 얼굴을 반 이상 덮는 '큰 마스크'로 가려줬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래서 네티즌의 비난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용의자는 "성폭행을 할 목적으로 지하철역에서 하차했다"고 자백했다. 아예 작심하고 사냥감을 찾아다닌 것이다. 성폭행 사건은 경험자가 일으키는 '재범'이 많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그 얼굴을 덮어주었다. 아마도 인권보호가 첫째, 경각심은 둘째이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뿐 아니라 이름까지 보호해주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 용의자의 이름은 대체로 '모(某)씨'다. 교통사고가 나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은 '모씨'다. 예외가 거의 없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이름은 '모씨'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용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람은 사건을 취급한 경찰관뿐이다. 경찰관을 제외하면 사건을 취재한 언론 정도가 고작이다. 평범한 국민은 얼굴도, 이름도 알 수가 없다.
국민은 그래서 더욱 불안하다. '생활공간'인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지하주차장에서마저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초등학교 여학생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사나이가 별안간 벽돌로 때리더니 지하주차장으로 끌고 가서 성폭행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아파트단지 내의 어린이놀이터도 안전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을 수는 없다.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아이들에게 어린이놀이터에서 뛰어 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별 수 없이 '골상학'이라도 익혀야 할 판이다. 우선, 마스크나 모자를 쓴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아이들을 재빨리 '피신'시킨다. 물론 감기환자가 엉뚱하게 오해를 받을 소지는 있다.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면 '골상'을 유심히 살펴본다. 히틀러나 하르만을 닮은 '골상'이면 아이들을 냉큼 불러들이는 것이다. 세상 살기가 이래저래 힘들어지고 있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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