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는 땅이 사방 천 리도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평평해서 높은 산이나 요충지도 없습니다. 군사도 30만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동쪽의 제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동쪽을 공격받을 것입니다. 서쪽의 한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서쪽을 공격받을 것입니다. 남쪽의 초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남쪽을 공격받을 것입니다. 북쪽의 조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북쪽을 공격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힘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을 소위 '사분오열(四分五裂)'이라고 합니다..."
'합종연횡' 가운데 '합종책'으로 유명한 소진(蘇秦)이 위나라 임금을 찾아가서 이렇게 떠들어댔다. 따라서 위나라는 '합종'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솜씨가 '청산유수'였다.
전국시대에 소진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럴 듯한 말솜씨 하나로 먹고살던 사람들을 '종횡가(縱橫家)'라고 불렀다. 이들은 똑같은 사람을 설득할 때도 목적에 따라 혓바닥을 다르게 굴렸다.
종횡가들의 말솜씨는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말재간을 열심히 연마했다. 소진의 경우는 문을 닫아걸고 책을 수십 권이나 읽었다. '태공망 병법'을 익힐 때는 피곤하고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읽었다(자고·刺股). 허벅지에서 '피를 쏟는' 노력으로 말솜씨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진은 마침내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췌마술'까지 터득할 수 있었다. 소진이 써먹은 '사분오열'이라는 고사성어는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대단한 말솜씨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말솜씨에도 불구하고 '찬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소진은 진나라 임금을 찾아가 '명함'을 전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만나주지도 않았다. "여러 차례 글을 올려 진나라 왕을 설득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여비가 떨어져서 하는 수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소진은 그럴수록 말솜씨를 개발했다.
초나라의 임금을 찾아갔을 때도 그랬다. 사흘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면담을 할 수 있었다. 푸대접이었다. 소진은 은근히 '뿔'이 났다. 임금을 만나자마자 "떠나겠다"며 작별인사부터 했다. 초나라 임금이 이유를 물었다. 소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초나라의 쌀값은 주옥보다 비싸고, 땔감은 계수나무보다 비쌉니다(楚國之食貴于玉, 薪貴于桂). 내가 주옥같이 비싼 양식을 먹고, 계수나무처럼 비싼 땔감으로 밥을 지으면서 어떻게 오래 머물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미주신계(米珠薪桂)'라는 말이 나왔다. 쌀값은 옥처럼 비싸고, 땔나무는 계수나무같이 귀하다는 얘기다. 물가가 '엄청' 비싸서 살기 힘드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초나라 임금은 소진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 '아뿔싸'했다. 극진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미주신계'는 마치 오늘날을 빗댄 말처럼 들린다. '연료'인 기름값은 진작부터 하늘을 찌르고 있다. 경유값마저 치솟아서 휘발유값을 따라잡고 있다는 보도다.
소비자물가는 5개월 연속 정부의 억제선을 넘어섰다. 정부가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힌 52개 품목 가운데 40개 품목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서민식품'인 콩나물마저 먹기 힘들게 되었다.
국제 쌀값도 폭등하고 있다. '파동'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가격이 오르니까 매점매석이 성행, 품귀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쌀이 남아돌던 나라들은 수출을 중단하거나 줄이고 있다.
지난 1년 사이에 국제 콩 가격은 65%, 옥수수는 73%, 쌀은 75%, 밀은 130%나 각각 올랐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행히 쌀만큼은 넉넉하다고 하지만 다른 곡물은 '속수무책'이다. 사료값이 뛰고 고기 먹기가 점점 어려워질 전망이다.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계수나무로 땔감을 하고, 옥으로 식량을 해도 그만이다.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만 먹을거리 걱정이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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