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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의 '불안한 수서양단'

올소맨 2008. 3. 31. 10:49

전한 무제(武帝) 때 나라 안에 두 '끗발'이 맞서고 있었다.  한 끗발은 위기후(魏其侯), 또 한 끗발은 무안후(武安侯)였다.  위기후가 고참, 무안후는 신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임금의 외척이었다.  그래서 끗발들이 만만치 않았다.  당연히 파벌이 형성되었다.  이를테면 '위파', '무파'였다. 


 

그렇지만 팽팽하던 세력균형이 느슨해지고 말았다.  위파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황후가 죽고, 무파 쪽에서 새 황후가 나왔기 때문이다.  위파의 힘이 좀 위축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파의 '거두' 무안후가 연나라 임금의 딸을 새 아내로 맞아들이고 축하파티를 열게 되었다.  위파라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위파의 관부(灌夫)라는 장군도 참석해야 했다.  관부는 세상이 인정하는 '꼿꼿 장군'이었다. 


 

관부는 파티에서도 꼿꼿한 성격을 발휘했다.  무파가 술잔을 돌리면서 자기들 힘이 좀 강해졌다고 뽐내며 위파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자 발끈해서 술판을 엎어버린 것이다.  "목이 달아나고, 가슴에 칼 구멍이 생기더라도 참을 수 없다"고 큰소리까지 쳤다. 


 

무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관부를 잡아 가뒀다.  '불경죄'로 처단하려고 했다.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처형될 판이었다.  그래도 관부는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위파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임금에게 시비를 가려달라고 상소한 것이다. 


 

임금 무제가 신하들을 소집해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신하들은 노골적으로 누구의 편을 들 수가 없었다.  양쪽의 끗발이 모두 겁났기 때문이다.  공연히 한쪽 편을 들었다가 다른 편에게 '찍힐' 수는 없었다. 


 

어사대부 한안국(韓安國)이 말했다.  "양쪽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판단하기 곤란합니다."  내사(內史) 정당시(鄭當時)도 우물쭈물했다.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다.  실망한 임금은 화를 내며 나가버렸다. 


 

임금이 나가자 무파의 거두 무안후가 한안국을 불러 겁을 줬다.  "그대는 어째서 마치 쥐가 쥐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것처럼 애매하게 굴었는가." 


 

여기에서 나온 말이 '수서양단(首鼠兩端)'이다.  쥐가 쥐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망설인다는 소리다.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요리조리 눈치만 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보신주의', '기회주의'라며 혼을 낸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서양단' 비슷한 게 적지 않다.  정치 철새들은 공천을 둘러싸고 '수서양단'이다.  공무원은 바뀐 정권에서 살아남으려고 '수서양단'이다.  앞 정권에서는 이런 말을 하다가 새 정권이 들어서니까 저런 말을 하는 '말 바꾸기 수서양단'도 있다. 

 

또 다른 '수서양단'도 생겼다.  '생쥐머리 새우깡'이 나오고, '생쥐 한 마리 채소'가 나오자 식품당국과 소비자의 눈치를 보는 '수서양단'이다.  제조업자와 판매업자들이 눈치만 보면서 '수서양단'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하게 사과하지 않고 '생쥐발'이 아닌 '오리발'부터 먼저 내밀고 있다. 


 

소비자 역시 '수서양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기 돈을 지불하고 사먹으면서도 과연 먹어도 괜찮을지, 먹지 말아야할지 망설여야 하는 '수서양단'이다.  '불안한 수서양단'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쥐의 해'인 '무자년(戊子年)'이다.  그래서인지 쥐가 제법 많아졌다.  먹을거리에서 쥐가 나오는가 하면, 쥐 같은 '서족(鼠族)'도 생기고 있다. 


 

'수서양단'의 뒷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안국은 식은땀을 흘렸다.  자칫하면 무파에게 밉보여 제거될 순간이었다.  일단 위기부터 넘겨야 했다.  머리를 굴렸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임금에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면서 처분만 기다린다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임금이 오히려 칭찬할 것입니다.  반대로 위파의 위기후는 부끄러워서 자살할 것입니다."


 

무안후는 한안국의 말대로 했다.  과연 무파는 임금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위파는 모조리 당하고 말았다.  무파라고 만수무강할 수는 없었다.  무안후도 병에 걸렸다.  위파에게 너무 심한 짓을 했다는 헛소리까지 하며 앓다가 하다가 결국 죽어야 했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