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소문내기

전라도 맛 _ 고추장·반지·가죽잎부각

올소맨 2008. 3. 18. 22:28

전라도가 맛있다

-남도음식의 블루오션을 찾아라

11.김해 김씨 종가 고추장·반지·가죽잎부각


전라도가 맛있다-남도음식의 블루오션을 찾아라
11.김해 김씨 종가 고추장·반지·가죽잎부각

양반가 기품 깃들다

11.김해 김씨 종가 고추장·반지·가죽잎부각
고추장


33도를 웃돌며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5일 나주와 광주의 경계에 위치한 광주 남구 양과동의 한 매실농원을 찾았다.

단정한 수가 놓아진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김해 김씨 72대손인 김경미(53)씨가 취재진을 맞았다. 10여년전 발생했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중이던 김씨는 남도 종가의 숨은 맛을 찾는다는 취재진을 위해 병원에 외출증을 제출하고 나와 음식 준비를 했다.

취재진에 내놓은 음료부터 남달랐다. 삶은 토마토에 직접 담은 매실쥬스를 넣어 갈은 음료는 피로 회복에 그만이란다.

나주읍에 터를 잡고 수 백년을 살았던 이 집안은 해남 원님을 비롯 김상호 제헌 국회의원, 김동규 전 법무부 차관, 김동환 전 광주시장 등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한 대표적인 호남 양반가다.

김씨는 이 같은 김해 김씨 삼현파 종가음식의 맥을 잇고 있다. 종가는 일제시대에 재산 몰수 등 갖은 수난을 당하면서 사실상 기능이 약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손끝이 야무지고 솜씨가 남달랐던 김씨는 종부였던 큰어머니로부터 음식비법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김씨의 큰어머니는, 그 분이 없으면 제사를 못 지낸다고 할 정도로 나주 일대에서는 음식솜씨가 꽤나 알려진 분이었다고 했다.
된장


고추장, 푸른곰팡이 제대로 숙성

손으로 떠서 맛본 된장은 조금 짰지만 끝맛이 개운하고 더위 때문에 시들했던 입맛을 확 깨웠다. 가을에 재벌하기 때문에 봄에 만든 된장은 일부러 짜게 담근다. 된장에 고추씨와 찹쌀을 넣는 것이 특이하다. 된장을 만들기 위해 메주를 띄울 때 반드시 지푸라기를 사용하는 것도 비법중 하나다.

고추장은 말로 만 듣던 5년 묵은 것이었다. 김씨는 고추장의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푸른 곰팡이 향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푸른 곰팡이가 제대로 숙성했을 때 나는 특유의 향이 있는데 그 향이 기가 막히다"는 김씨는 "요즘 시중에 파는 고추장은 말할 것도 없이, 유명하다는 고추장에서도 푸른 곰팡이를 제대로 숙성시킨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씨 집안에서는 보통 3년이나 5년된 고추장을 먹는다.

장은 그냥 먹었는데도 짠 맛이 돌지 않고 담백하다.
매실장아찌


된장 고추장에 이어 반지를 선보였다. 반지는 양반가의 김치다. 반지를 내놓으면 요즘 사람들은 물김치 정도로 안다. 절여놓은 배추에 사과 배 피망 무 당근 파, 밤, 청강, 실고추를 채썰어 넣고 고추는 끝물, 즉 푸른고추가 막 붉어지려고 하는 것을 따서 말린 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고추를 구하기가 힘들어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보는 반지는 붉은 고추를 사용하기 일쑤란다. 끝물 고추를 사용하기 때문에 반지는 가을에 담근다. 반지를 담가 그릇에 담은 후에는 새우젓을 부었다.

끝물고추로 담는 '반지'
가죽잎부각


된장과 고추장이 담는 솜씨가 남다르고 뛰어나다보니 당연히 다른 음식에도 이들 장류가 기본으로 들어간다.

가죽부각은 초봄에 나는 참가죽나무의 순을 사용한다. 다른 집과는 달리 참가죽순에 고추장을 바른다. 이 가죽잎부각은 청주나 정종 안주로 먹으면 그 향이 배가돼 집안 어른들이 즐기셨다고 했다.
반지 담그는 모습


종가의 이런 저런 음식을 만들어 보이고는 종가가 있었던 나주로 이동했다. 나주에서 손꼽히는 양반가에 천석꾼 집안이었지만 모진 세월을 보낸 탓에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나주 중심가에 김해 김씨 집안의 열녀문이 인근 식당과 주택가 사이에 옹색하게 자리해 있을 뿐. 아직도 옛터에서 살고 있는 김씨의 먼 친척뻘 되는 오빠 김중민씨. 중학교부터 서울에서 생활했다던 김중민씨는 타지 생활중에도 집안의 내림음식으로 어머니가 만드셨던 고추장 맛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기획취재팀 blog.naver.com/mdfood1

김해 김씨 삼현파 종가음식 맥 잇는 김경미씨

"음식 만드는 것, 하나의 예술이죠"

"음식 만드는 것도 일종의 예술입니다. 음식을 만들때마다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만듭니다."

김해 김씨 삼현파 종가음식의 맥을 잇고 있는 김경미(53)씨.
김경미


어렸을 때 종가에서 지내던 김씨는 13세때부터 절구에 고추를 갈아 김치를 담그고 떡을 잘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 자신을 기특해 하시던 큰어머니(종부)가 자신에게 집안의 내림음식들을 하나씩 알려주셨고 그 음식 만드는게 재밌어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김해 김씨 삼현파 음식의 맥을 잇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됐다.

"종부이셨던 큰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종가에서는 음식의 맥이 끊긴 상태"라는 김씨는 "어렸을 때부터 음식 만드는 걸 좋아했던 내가 그나마 집안의 음식비법을 물려받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주지역에서 유림회장을 맡으셨던 조부님이 가죽잎 부각을 좋아하셨다"며 "시조를 잘 하셔서 술과 부각을 싸들고 낚시를 가셔서 드시곤 했다"고 기억을 되새겼다.

"음식은 자기 본성을 잃어버리면 안되요. 웰빙이라고 해서 전통 음식들이 개량화 되고 있는데 짠맛은 짜게 신맛은 시게 매운맛은 맵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맛이 납니다"라고 말하는 김씨는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전통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순창고추장이 유명하다지만 우리 종가 음식에 비할 바는 아니다"며 고추장 자랑을 하던 김씨는 이 음식비법을 딸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입소문이 나서 된장 고추장을 얻으러 오시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가내 공업이라도 해서 이 음식비법을 세상에 전수해 주고 싶은 게 김씨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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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나주의 맛 복원해야

나주읍성의 터줏대감 김해김씨 집안에서 맛본 반가음식은 옛날 나주음식의 맛 그대로였다.

김해김씨 종가의 종부는 만날 수 없었지만, 그 후손인 조카가 내 놓은 반지, 된장, 고추장, 가죽잎부각, 매실장아찌의 맛은 종부인 큰어머니에게서 배운 그대로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도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들고 있으며, 그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음식을 내 놓으며, 현재 유통되는 전통음식과의 차이를 일일이 지적하며 설명해 주었다.

나주의 대표적인 양반가의 김치 반지는 초가을에 끝이 빨갛게 약이 오른 풋고추를 처마 밑에 말려서 학독에 거칠게 갈아 토하젓을 넣어 담는다.

마늘을 많이 넣고, 생강과 새우젓을 함께 갈아 찹쌀풀과 섞는다. 절인배추에 양념을 비벼 굵직하게 썬 무를 함께 항아리에 넣고, 그 위에 잔새우를 끓여 받친 젓국을 뿌린 다음, 매실주를 넣으면 향이 나며 이물질이 끼지 않는다. 국물을 흥건히 붓는 것이 특이했고, 김치를 국물과 함께 떠먹는다.

찰밥과 고추씨를 넣은 된장은 그 향과 은은한 맛이 일품이었고, 누룩과 엿기름을 넣어 만든 5년 묵은 고추장은 물엿을 많이 넣은 요즈음 고추장과는 빛깔과 맛이 많이 달랐다.

붉은 빛이 나는 가죽잎부각은 옛날 마당에 흔히 볼 수 있는 가죽나무에서 딴 어린잎으로 만드는데 고추장, 청장을 넣어 찹쌀풀을 써서 색깔이 붉었고, 들기름을 발라 석쇠에 구워야 제 맛이 난다.

매실장아찌는 일본식 우메보시와 만드는 법은 비슷하다. 매실과 소엽, 설탕을 켜켜이 깔아 붉을 물을 들이고, 이 것을 고추장에 버무려 상에 올린다.

나주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요리강의를 하면서, 나주에서 나고 자란 고등학생들에게 반지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이름조차 생소해 했다. 나주만의 방식으로 담은 된장과 고추장 맛을 모르는 것 또한 안타까웠다.

현재 나주목사와 나주읍성 동문 등이 복원되고 있다. 문화를 다시 세우려는 노력에는 옛 음식의 복원 또한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상들이 살아왔던 풍습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이고, '신토불이' 그 지역에서 나는 식품으로 만든 음식은 그 토양이 주는 정신이다.

나주의 방식대로 끓인 나주곰탕이 상품화되어, 이 곳을 찾는 이들이 반드시 맛보고 가는 실정이다. 나주곰탕이 나주를 기억하게 하는 것처럼, 나주사람들이 먹었던 김치인 반지와 된장, 고추장 등의 맛을 나주에 가면 먹어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광주여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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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법에 가문명성 고스란히

인걸은 가고 없다. 그러나 기록은 영원하다. 거기에는 영특한 한 소녀의 눈썰매와 매운 손끝이 대대로 내려오는 김 해남 집안의 음식만이라도 살려내려 하고 있다.

김경미 여사는 조부님의 손을 잡고 향교를 어려서 출입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큰어머님으로부터 보고 배운 그 향그럽고 깊은 맛이 나는 반가의 비법이 가문의 명성이라 한다.

김경미여사는 연호(璉浩)의 딸로 1953년에 나주에서 태어났다.

연호는 조선조 해남원님을 지냈던 김해김씨 삼현파 용규(致權)의 직손이자 나주에서 항일 3대로 유명한 창곤의 다섯 손자 중 4째요, 김철 독립지사의 형이다. 그리고 김상호의 열단사건 및 제헌국회의원, 그리고 근세의 김동환 광주직할시장 등의 집안이다.

김경미 여사의 증조 창곤과 조부 종석은 한말 단발령을 거부한 사건으로 죽임을 당했을 뿐 아니라 재산까지 몰수당해 일시에 종가가 풍지박살이 나면서 다른 친척집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고 복받친 울분을 삼키며 종가가 스러진 것을 가슴아파한다.

해남원님 용규는 대대로 살아온 나주사람이었다. 그 집터는 금성산이 뒤가 되고 무등산이 아니 멀리 보이는 나주목의 제일 높은 곳이었다.

그러니까 향교 뒤 광-목간도로 위쪽 대밭이 그 집 뒤 대밭이었는데 길을 내면서 집터는 없어졌지만 정원의 연지에 잉어가 노니는 것을 보고 자랐던 50여 년 전 경미 소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일본에 항거한 조선인들을 두고두고 못살게 했던 아픔이 서린 가문, 의로운 이들의 존립마저 철저히 없애려 들었던 뼈아픈 일제치하.

그 통한의 슬픔을 간직한 한 소녀의 의로운 눈빛이 반짝이면서 그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면서 먹었던 양반가의 반지와 간장 된장 고추장, 그리고 참 가죽순 부각 등을 재현해냈다.

양반은 빌어먹을지언정 자존의 가치는 꺾을 수 없다는 김 여사의 눈빛에서 반지의 깊은 맛과 상큼함이 우러난다. 김용휴 향토사학자
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