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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맛 _ 조기찜·홍어찜·약식·오이초선

올소맨 2008. 3. 18. 22:26

전라도가 맛있다

-남도음식의 블루오션을 찾아라

10. 연안김씨 종가 조기찜·홍어찜·약식·오이초선


전라도가 맛있다-남도음식의 블루오션을 찾아라
10. 연안김씨 종가 조기찜·홍어찜·약식·오이초선

할머니가 좋아하셔서…

할아버지가 즐기시니…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사당, 서당, 안대문, 바깥대문, 마방간, 연지까지 갖춰 중요민속자료 제234호로 지정된 영광군 군남면 동강리 동편부락 연안김씨 종택.

조선후기 양반가옥의 대표사례로 꼽힐 만큼 고풍스런 가옥의 모습과 선조들이 대물림하듯 효성이 지극해 나라에서 정려돼 세웠다는 솟을 지붕 '3효문' 등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인상적이다. 3효문은 현 주인의 14대손인 진, 9대조인 재명, 8대조인 함의 효성이 지극해 나라에서 세워준 것이다.

이곳저곳 집안 곳곳을 모두 다니면 열리는 대문만해도 50개는 족히 넘어설 듯하다.

연안김씨 15대 종손인 김성호(73)씨와 종부 김소희(70)씨가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기찜


김씨는 16세기 중엽 연안김씨 직강공파 4대손인 김영이 영광군수로 부임하는 숙부를 따라 이곳에 정착하는 과정과, 가옥과 선친들에 대한 이야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상차림과 전통음식 등을 설명했다.

"지난 6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전국의 46개 종부들을 초대해 '전통을 지키느라 고생한다'며 관리의 어려움과 지원책 마련을 얘기해 감흥을 받았습니다. 결혼초 한때는 집에서 살기도 했으나 지금은 광주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관리하는 것이 정성없으면 못하고 이제는 한계를 느껴 대책을 마련중입니다."

김씨 내외는 선친들이 즐겨먹던 반찬과 음식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자랑거리는 조기찜과 홍어찜, 약식, 오이초선 등이며 굴비고추장과 굴비장아찌도 즐겨먹는다고 전했다.
홍어찜


'효자집안'답게 대대로 내려온 음식들은 정갈하고 깔끔했다. 또 조상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다보니 제사 상차림이 발달해 짠음식이나 매운음식은 멀리하고 육식보다 채식위주로 식단이 이뤄졌다.

김씨는 "집안 내림인지는 몰라도 종부들이 일찍 세상을 뜨는 등 '상처집안'으로 안식구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내림음식은 결식할 정도의 소식과 절약으로 특별할 것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때 마방간까지 둬가며 만석궁 소리를 듣던 때도 있었고, 선친이 정치한다고 재산을 날리기도 했으나 효자집안 대물림 정신이나 선친들이 즐겨먹던 내림음식과 솜씨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약밥


지금도 엿기름을 길러 맑은 물만으로 식혜를 만들어 즐겨먹고 선친이 좋아했던 홍어찜도 꼭 빠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취재과정에서 연안김씨 종가집 찾아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법성포 가는길에 군서쪽으로 방향을 틀라는 말을 듣고 법성포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 영광읍내에서 다시 길찾기에 나섰고 안내판도 마을입구에 위치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고풍스런 가옥과 효자집안 등 어린이들에게 산교육장으로, 전통체험코스로 개발해도 좋을 듯 했고 주변 불갑사와 법성포, 원불교 성지까지 거리가 20∼30분 정도로 관광연계전략의 필요성도 느꼈다.

멀리 내다보이는 영광 칠산앞바다에서 구름그늘에 가린 검은 물빛이 장관이다. 한줄기 바다바람이 불더니 어느새 저녁노을이 그림자처럼 주변을 감돈다. 기획취재팀

"궁궐제례 형식 상차림, 힘들죠"

연안김씨 15대 종부 김소희씨


"평생동안 선조들의 제사를 모신 생각 밖에 없습니다. 제사음식에는 정성이 들어가야 하니 항상 골치가 아프죠."

연안김씨 15대 종부 김소희(70)씨는 "한달에 1∼2차례씩 일년이면 15번까지 제사를 지내봤다"며 "다행히 증조할아버니가 궁궐의 축관(祝官)으로 일해 음식 상차림은 궁궐제례와 똑같아 더욱 힘들었다"고 그간 제사 고충을 토로했다.

축관은 제사지낼 때 축문을 읽는 사람이나 종묘·사직·문묘의 제사 때 축문을 맡아 읽던 임시 벼슬을 말한다.

김씨는 "집안 음식이야 특별한 것은 없지만 영광 앞바다에서 나오는 싱싱한 생선과 채소 등 주변의 재료들로 만든 음식이 주로 식단에 올랐다"며 "지금도 식혜는 물론 메주를 직접 담가 만든 된장 등을 집에서 만들어 상차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궁궐음식중 한가지인 오이초선을 선보였는데 오이를 쪄서 사이사이에 고명을 넣은 뒤 식초를 뿌린 음식으로 향과 맛이 독특했다.

김씨는 "여느 집안 음식과 별 차이는 없겠지만 맵지 않고 짜지 않은 점과 된장 고추장 등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찬음식 위주라는 점, 조기찜과 홍어찜 등 주로 찜음식을 즐겨먹는다는 점이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현의 명가음식 엿보기 전라도음식의 산업화 . 세계화 제언

정통 한정식 특화해야

연암김씨 집안의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의 음식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하얀 모시수건을 보는 것 같았다. 굴비, 조기, 홍어, 찹쌀, 매실 등 영광지역의 특산물과 귀한 재료들을 다양하게 사용한 음식에서는 종택에서 느껴지는 부(富)를 느낄 수 있었다.

조상들이 대대로 벼슬을 지냈으며, 증조할아버지는 이씨 왕조의 제사를 집도하는 축관을 지내고 낙향하였다. 그래서 궁궐의 제사상차림이나 평상시 음식을 그대로 전수받았다는 종부의 설명을 듣고, 음식을 접하니 전라도의 다른 명가음식에서 볼 수 없었던 ‘오이초선’이 있었다.

‘선’이란 야채를 찌는 조리법을 뜻한다. 지금 한식조리기능사 시험과목 중에 소금에 절인 오이를 기름 두른 팬에 볶는 오이선이라는 요리가 있다. 궁중요리를 책으로 펴낼 때 일본요리방식을 도입하여 잘못 전수되고 있지 않는가 하고, 몇몇 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연암 김씨의 집안의 종부가 차려낸 오이초선은 ‘오이에 칼집을 넣고, 조미된 소량의 국물에 쪄낸 다음, 양념하여 볶은 쇠고기와 표고버섯, 채 썬 달걀 황백지단을 끼워 넣고, 촛물을 끼얹은 요리’였다. 이 음식이 바로 궁중방식 그대로 만든 오이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이나 책을 통해서 과거의 요리로만 여겨졌던 궁중요리를, 연암 김씨 집안의 종부는 대대로 이어져오는 우리집안의 음식이라며 습관처럼 요리하고 있었다.

제사 음식으로는 선대의 할머니께서 홍어를 좋아하셔서 그 분이 돌아가신 뒤로는 제상에 홍어찜을 빠트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조기찜은 조기를 먼저 한번 쪄낸 다음, 깨, 마늘, 실파만을 고명으로 얹어 다시 찐다. 흔히 올리는 달걀지단, 실고추, 석이버섯 등을 올리지 않는 것이 특이했다.

같이 식사를 하던 7세 어린아이가 김치 맛이 좋다며, 묵은지로만 밥을 한 그릇 뚝딱 비웠다. 게장이 밥도둑이라는 말을 들었어도 묵은지가 밥도둑일 줄이야!

영광 군남마을 효자문을 뒤로하고 궁중요리 방식의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면 좋겠다. 전라도를 대표하는 음식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가짓수 많은 한정식이다. 각기 맛이 강한 음식을 함께 내놓는 것이 아니라 맑고 담백한 맛이 조화되도록 하며, 전라도에서 보기 드문 궁중의 조리방식과 조정의 벼슬을 지낸 조상으로부터 전수받은 정통성을 겸비한 한정식을 맛보이는 것이다.광주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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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학이 비공하는 종택

영광군 군남면 동간리 동편마을 연안김씨 종가에는 조상 제사상을 궁중요리 방식으로 대대로 전하여 내려왔다는 15대종손 김성호씨 부부를 찾았다.

연안김씨는 원래 신라 김씨 왕족이었으나 왕에게 바른 말을 간하다 시염성(지금 연안)으로 유배당하여 살았던 그 후손 김섬한을 시조로 한 성씨다.

동간리에 종가를 이룬 이는 김영이다. 서울에 살았던 김영이 숙부 영광군수 김세공을 따라왔다 내동에 사는 정(丁)씨 집안으로 장가를 들어 외동에 터를 잡은 연유다.

외동 연안김씨종가 터는 북동 향이다. 동구 앞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냇물 건너 영광읍이 한 눈에 보이는 수퇴산(물무산)이 문필봉으로 솟아 안산을 이루고, 뒤 삼각산에서 뻗어 내린 오른편 산자락과 왼편 산자락이 쌍학을 이루는 왼편 끝자락이 거북의 형상이다.

쌍학은 하늘을 날고 거북은 물을 만나 기(氣)가 승하는 쌍학의 두 부리아래 잡은 집터.

외가 동네에서 성가를 이룬 연안김씨, 인연이란 알 수 없는 연의 고리임이 실감하게 하는 예와 오늘이다.

후손 상립은 성균관 진사로 출사의 길을 열어, 훤과 종관은 문과급제로 나라에 충으로 임했고, 진(1599년), 재명(1738년), 함(1760년생)은 효자로 나라에서 정려를 내려 바깥대문 누대에 정문(旌門)을 설치해 이 문을 삼효문(三孝門)이라 하여 효의 산실이기도하다.

김씨 집안은 문과 귀와 부의 명가이다.

종가 안채 상량에 ‘숭정기원후사무진이월이십구일’이니 고종 5년 1868년에 지어진 집안 일원은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그리고 사당, 서당 및 안대문, 마구간, 헛간, 찬광, 장독대, 연못, 바깥대문 등으로 배치되어 조선후기 반가(班家)의 구조와 공간을 엿볼 수 있어 1998년 1월 5일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34호로 지정되었다.

삼효문 전후 현판은 고종황제의 형 이재면(한말 내부대신)의 글씨다.

충과 효의 역사현장을 영원한 체험장으로 활용되어졌으면 한다.  김용휴 향토사학자


호남의 입   무등일보에서 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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