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가 맛있다 -남도음식의 블루오션을 찾아라 7. 지실마을 정영택가 ‘불뚱지’
전라도가 맛있다-남도음식의 블루오션을 찾아라 7. 지실마을 정영택가 ‘불뚱지’ 상큼 익어 갈 때 상큼한 맛과 향이 일품 주변 가사문화권 연계 후손들의 몫
함께 동행한 김용휴 선생이 이당 선생의 삶을 짤막하게 대신 전했다. 16세에 영송 김제홍 선생 후학으로 들어가 한학을 접했고, 17세에 결혼과 함께 남원으로 건너간 뒤 20세에 보성의 효봉 안규용 선생 문하로 들어가 학문의 폭을 넓혀갔다. 이당은 당시생활에 대해 "소금에 고춧가루를 말아 먹기도 했다. 없이 살 때 였지만 배운다는 일념 하나 때문에 가능했고 배고픔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당이 좋아하는 주메뉴는 불뚱지와 고추장, 감단자를 비롯해 동치미와 파지 등 순수 할머니 손맛에서 나오는 제철 음식들이다. 간간이 생선과 찌개도 추가된다. 그중에서 불뚱지는 꽃대가 올라올 무렵 따내 간수에 담궈 숨만 죽인 뒤 3일 지나 다시 소금 간을 해 직접 손으로 맛을 내는 방식이다. 조선상추 씨앗을 400년동안 내림으로 받아 상추김치를 담아내는 정성이 그만이다. 어떤 조미료도 첨가되지 않는다. 때문에 익어갈 때 상큼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89세의 박부남 할머니는 '손맛에 따라 되는 대로 한다'고 했지만 수백년 조상 대대로 살면서 눈으로 보고 배운 묵은 솜씨 같았다. 고추장도 메주가루를 띄우고 물엿 대신 찰밥과 고춧가루만을 섞는 전통방식이어서 콧등에 땀이 생글생글 맺힐 정도의 얼큰한 기운이 밥맛나게 만들었다. 마을에는 320년 된 은행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말해줬고, 개울가를 따라 길게 펼쳐진 그늘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마을을 빠져나와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 독수정 등 가사문화권 일대와 광주호 주변에 새롭게 만든 호수생태공원 등을 돌면서 전통음식의 발굴과 함께 주변 관광지와의 연계 전략은 후손들의 몫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관광객은 "가사문화권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풍광이 뛰어나다"며 "알려지지 않은 곳이 오히려 매력적이듯 음식도 알려진 식당보다 전통이 살아쉼쉬는 가정체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박부남 할머니인터뷰 "별다른 것 없이 손맛따라 늘상 해오던 음식입니다" "상추를 소금에 절여 잎을 따지 않은 채 줄기째 양념을 합니다. 친척들이 찾아와 맛을 보면 다들 맛있다고들 합니다." 박부남(89) 할머니는 매일같이 즐겨먹는 불뚱지와 고추장을 담그는 비법을 소개해달라는 주문에 "별다른 것 없이 손맛따라 늘상 해오던 음식"이라고 대답했다. 실제 별다른 재료와 양념없이 맛있는 상차림이 이뤄졌고, 그 비법은 400년동안 집안 대대로 내려온 전통과 계절에 따른 손맛으로 여겨졌다. 상차림 음식의 정갈함도 놀랍지만 나이에 비해 저렇게 정정할까 의문이 들었다.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집 주변 텃밭에는 모두 상추와 깨, 콩들로 심어졌고, 이당선생이 한학에 매진할 때는 농삿일도 혼자 몫이라고 한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한학자를 남편으로 모시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박 할머니는 "공부하는 학자라고 해서 시집왔는데 살아보니 쌀독에 쌀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지금까지 삶이 답답했다"고 가슴속에 채워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18살 때 친정에서 혼인식을 한 뒤 3년만에 처음으로 담양 시댁을 찾았는데 저 양반(남편)이 공부한다고 짐을 싸들고 남원으로 가더라구요. 지금은 생각도 못할 일이지요." 박 할머니는 "당시는 삶이 고단해도 이겨냈는데, 이제는 후회스럽다"며 "그러나 다 늙어서 후회한들 무엇하겠느냐"고 금새 말문을 돌렸다. 박 할머니는 "일반 개량종 상추는 연하지만 우리집네는 향이 독특하고 깊은 맛이 난다"며 "감 단자도 콩고물보다 밤고물을 사용하는 등 집안 대대로 내려온 음식이 아직도 입맛에 맞는다"고 말했다.
담양 지실마을 정씨가의 상추김치 '불뚱지' 발견 평생을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고, 지금은 사라져 가는 양반의 모습과 생활방식으로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이당선생과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 준비는 89세 되신 안주인의 손끝에서 이루어졌고, 잔심부름은 손자가 맡아했다. 밥상은 소박하지만, 장, 젓갈, 김치, 굴비구이, 조치, 무침 등 한식 반상차림의 가짓수와 놓는 법의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식사를 준비할 때, 안주인이 상을 둘러보시더니 급히 조기를 굽기에 그 이유를 몰랐는데, 반찬가짓수를 점검하다 빠트린 것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구운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다. 바깥주인의 밥상은 대청마루에 따로 차리고, 안주인은 부엌에서 손자와 함께 하셨다. 정철 선생의 후손 이당선생댁에서는 400년째 이어져 내려오는 상추씨앗을 가지고 텃밭에 상추를 키워 '불뚱지'라 불리는 상추김치를 담고 있었다. 조선시대부터 상추를 키워왔고, 그 씨앗을 받아 이듬해 다시 뿌려 상추를 키워오기를 400년. 같은 토양에 같은 종자의 씨앗을 뿌려 거둔 상추로 김치를 담았고 후손들은 그 찬을 그대로 먹어오고 있었다. 불뚱지의 맛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켰고, 조선시대 유물을 보는 느낌이었다. 불뚱지를 담는 상추는 씨가 나오기 전 연할 때, 뿌리부터 줄기와 짧은 잎을 사용한다. 보기에는 색깔이 검고, 대가 길어 어린 갓과도 같았고, 향이 베어나오는 것이 허브같기도 하고, 입에 넣고 깨물어보니 쌉싸름한 맛이 약초를 씹는 것도 같았다. 개량종 상추는 향이 적고 잎이 큰 반면, 정씨 집안에서 키운 상추는 빨리 피고 연하며, 수확량이 적어 초여름 잠깐 재배하는 귀한 상추이다. 상추 절이는 방법도 먼저 굵은 소금을 적게 뿌리고, 잠시 후 간수에 담갔다 건져 바구니에 받쳐 놓는다. 학독에서 고추와 마늘, 양파를 갈아 고추양념을 만들고, 물기 빠진 상추를 슬슬 비벼 담는데, 비비는 손의 주름만큼이나 삶의 깊은 맛이 베어나왔다. 배추김치 담는 법도 나주지역에서 전해져오는 '반지' 담는 법과 비슷했다. 배추와 무를 켜켜로 깔면서 굵은 소금을 약간 뿌려 놓고, 3일 후에 고추와 양념을 함께 간 묽은 고추양념을 부어 발효시킨다. 파김치도 파를 씻어 물기를 뺀 다음 고추양념에 비비지 않고, 간수에 담궈 절였다가 담는다. 전라도는 김치의 종주국으로써, 김치축제를 통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광주시의 대표적 김치 브랜드 '감칠배기' 와 김치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 개발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김치회사들의 영세성, 식중독 사건 등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으로 식품사업은 항상 힘들고 어렵다. 식료품점에는 타지역에 있는 대기업의 김치들이 포장되어 판매되는 것이 현 실정이다. 과거 조선시대에 뿌려졌던 상추씨앗이 400년이 지난 지금 담양에 남아있다. 김치의 본고장 전라도에 그 정통성을 부여해 줄 뿌리를 한가지 발굴해냈다. 하루하루 사라져 가고 있는 조상들의 김치 만드는 방법을 빨리 전수받고 보전해야 하며, 전라도의 김치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해야겠다. 광주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맛과 향, 그 인품을 클릭하자 도학자 이당 정영택 선생 이당 정영택선생은 도학자다. 필자와 선생의 만남은 우리 정통민족사관을 알기 위해 전국을 누비다 뵙게 된지 어언 20여년 전이다. 선생의 춘추 88이니 올해 미수(米壽)다. 선생은 어려서 집에서 공부하다 열여섯에 혼인하고 반가(班家)의 예대로 3년을 묵힌 뒤 신부가 오는 날 아침 일찍 남원으로 떠나 공부를 마치고 다시 보성 효봉문하에서 글을 마친 다음 책과 자연을 벗으로 삼은 분이다. 그러니까 입신양명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마음을 밝히는 공부랄까. 선생의 사랑채 근사재(近思齋)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고서도 많다. 그러나 중국 옛 패문운부 90권과 중문대사전이 눈에 띄는데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몇 째 안에 구입하여 보화로 여긴다. 지실마을은 만수산과 명봉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무등산에 백운이 감도는 원경과 두 시냇물이 모여 동네 앞으로 휘돌아 광주호를 이루고, 뒤 산자락에 식영정 서하당과 소쇄원이 있고, 증암천 건너 환벽당 취가정과 독수정이 있어 정자와 원림의 절세지다. 그래서 광주 전남의 도학사상과 선비정신의 맥이 흐르는 곳의 일원이다. 자연의 경관을 도학사상과 선비정신의 바탕으로 삼았던 선현들 같이 호연지기를 구가하며 사신 이당선생 또한 조선 패망의 영향이 커서인지 매천선생의 절사하신 뜻을 자주 말씀하셨다. 글만 읽은 이당 정영택. 마음을 세우고 눈을 뜨기 위함만이 아닌, 답지 않으면 보지도 않고 입에도 올리지 않으시니 어찌 도학자가 아니겠는가. 지실은 대(竹)밭이 많다. 구만리장천을 날으는 봉황은 참대밭 오동나무에 깃들어 아침햇살에 운다. 60년만에 피어 열린 죽실을 따 먹고 산다는 상서로운 새, 귀인이 나오면 출현한다는 대밭과 오동나무의 정취가 그려질 때 이당선생이 송강선생의 시를 읊자 흰구름 두둥실 무등산을 감도니 예가 무릉도원 아닌가. 가사문학관이 세워지기까지 결정적 역할을 한 송강과 지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상추로 담은 불뚱지의 향이, 선생의 사상이 연지의 연화로 맺혀 반조되었다. 김용휴(향토사학자) 무등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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