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소문내기

전라도맛_ 달맞이흑두부

올소맨 2008. 3. 18. 22:16

 전라도가 맛있다!

남도음식의 블루오션을 찾아라 -

4.화순 달맞이 흑두부


 


 

 

 

 

 

 

 

 

 

 

 

 

 

 

 

 

 

 

 

 

 

 

 

 

 

 

 

 

 

 

 

 

 

 

 

 

 

 

 

 

 

 

 

 

 

佛家 검은두부

俗世를 맑게 한다

사찰에서 전해 내려온 귀한 음식

'블랙푸드' 부상에 최근 인기 UP

달맞이 흑두부 인기비결

100% 남도 콩 구입

장작불 떼며 가마솥에 끓이는

전통제조법 고수

'블랙 푸드(black food)'란 말이 있다. '검정색을 띤 자연식품이나 이것을 이용해 만든 음식'을 통칭해 일컫는 용어다.

블랙 푸드가 최근 '웰빙' 바람의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뜨고 있다.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릴 만큼 단백질이 풍부한 '콩'.

'콩나물국·무침, 콩 자반, 콩비지, 두부…' 등 옛부터 우리 식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해 너무나 친숙하고 익숙한 '콩'.

이 콩을 이용해 만든 음식이 블랙 푸드와 만난다면 무슨 맛이 날까.

최근 블랙 푸드 인기 비결에 '검정콩'이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취재진이 향한 곳은 '흑두부집'이었다. 검정콩은 피를 맑게 해주는 효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남도에 완연했던 봄의 끝자락을 아쉬워 하듯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 8일.

너릿재 터널을 지나 화순읍에서 국도 22호선을 타고 사평 방향으로 30여분간 달리다 화순군 동면 천덕리에 있는 '달맞이 흑두부'에 도착했다.

'가는 봄을 시샘하는 비가 내려서 일까'

식당 앞에 펼쳐진 논밭과 시골길이 상큼하게 다가온다.

'타∼닥, 탁탁탁….'

두부를 끓여내는 장작불 타는 소리가 빗소리와 어울려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두부전골


이 곳 식당은 제주양씨 가문 출신으로, 조선시대 대학자 중의 한명인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13대손인 양덕승(45)씨가 운영하고 있다.

양씨가 흑두부를 만들게된 계기는 송광사 주지를 지냈던 현고스님과의 인연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불리고 있지만,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에게는 무척 생소했던 흑두부.

하지만 사찰에서는 '검정콩 두부'나 '검은두부'라 해서, 오래전부터 스님들이 귀하게 여기며 애용했던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이것이 인연이 돼 양 사장은 사찰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검정콩 두부에 흑두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생명을 불어넣게 된다.

'흑두부'라는 말도 양 사장이 만들어 상표 등록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두부보쌈



 

 

 

 

 

 

 

 

 

다만 불가(佛家)와 속세(俗世)의 흑두부에는 몇가지 다른점이 있다.

사찰에서는 육식이 금지돼 흑두부만 먹었다면, 양 사장은 일반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삶은 돼지고기와 배추김치를 곁들여 흑두부보쌈을 선보였다.

또 튀기고 소스를 더해 흑두부 탕수육을 선보이고 버섯과 갖은 야채를 푸짐하게 넣어 전골로 끓여내기도 한다.

단일 식품으로도 인기를 얻는 흑두부를 좀 더 보편화시키고 다양하게 먹을 수 있도록 메뉴를 개발한 것이다.

이 곳 흑두부집의 성공 비결은 대략 세가지로 꼽힌다.

우선 최대한 옛 방식을 그대로 살린 제조법이다.

수요에 따르려면 기계화가 불가피하지만 양 사장은 5∼6시간 물에 불린 검정콩을 맷돌로 간 뒤 무쇠솥에 넣고 참나무 장작불로 끓이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비지파전


심지어는 한 여름에도 장작불을 떼고 가마솥의 두부를 주걱으로 저어댄다.

가스를 사용해 불을 땔 경우 두부의 맛이 제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장작불를 이용해야 지긋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우러난다.

또 흑두부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검정콩은 모두 이곳 전라도 땅에서 재배된 것들이다.

60%는 농가에 콩 종자를 줘서 가져오는 계약재배, 30%는 농협, 10%는 주변 할머니들이 머리에 이고 오는 것을 산다고 한다.

마지막은 간수다. 가마솥에 끓인 두부를 응고시킬 때 간수를 넣게 되는데 보통은 소금을 사용하지만 양 사장은 바닷물을 가져다 사용한다고 한다.


바닷물의 염도와 온도 조절에 따라 맛이 결정되는데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비법이라 정확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도 사찰에서 지내다 보면 몸이 완쾌 된다고 한다. 환경적인 요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음식에서 나온다.

하지만 사찰 음식이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는, 입맛에 따라 다소 무미건조할 수 있다. 기획취재팀


이 기사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mdfood1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지현의 명가음식 엿보기 전라도 음식의 산업화 세계화 제언


치즈 대체품 가능성 충분

체험장 연계로 산업화 모색해야·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날 푸르른 시골길을 지나 도착한 달맞이 흑두부집. 검은콩으로 만들었기에 검정 두부로만 알고 있었지만, 이집 주인의 아이디어로 흑두부라는 이름을 붙였단다. 주인이 직접 설계해서 지었다는 한옥 형태의 아름다운 식당은 현대와 과거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마당 뒷켠에서는 직접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콩물을 끓어내 흑두부를 만들고 있었다. 콩물을 끓여내는 작업은 옛 방식 그대로였지만 비지를 걸러내거나 콩물을 짜내는 방법은 맷돌로 누르되 기구를 사용하여 힘들이지 않고 편리하게 하였다. 이 역시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모습으로 사장의 합리적인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었으며 대량생산의 가능성을 엿 볼 수 있었다.

검은 콩은 대두와 영양소의 함량은 비슷하지만 노화방지 성분이 4배나 많고 성인병 예방과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는 건강식품이다. 이와 비슷한 식품으로서 서양의 치즈는 우유 단백질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최근 웰빙의 바람으로 채식을 위주로 한 동양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국에서도 순두부가 인기음식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서양사람들에게 두부를 선보인다면 치즈 대체 식품으로도 판매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검은 콩의 좋은 점만을 가득 담고 있는 흑두부는 최고의 웰빙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검은콩으로 만든 흑두부는 사찰음식으로서 송광사 현고 스님께서 사장에게 일러주셨던 음식이라고 한다. 고기를 금하는 스님들의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검은콩으로 만든 두부는 절에서도 특별한 날만 보는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찰음식을 대중화 시킨 사람이 바로 양승덕 사장이다. 그는 흑두부는 흰두부와 만드는 과정이 달라 많은 시행착오 끝에 오늘날의 흑두부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검은콩에서 시작해 검은콩으로 끝난다는 말처럼 흑두부보쌈, 흑두부버섯전골, 비지파전, 순두부찌개, 두부김치찌개, 청국장찌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음식을 개발한 것을 보고 그 장인 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두 검은콩 천지였다.

검은콩물은 고소하고 진한 맛이었다.

흑두부보쌈은 고소한 흑두부와 쫀득한 돼지고기에 막 담은 생김치와 묵은 김치, 깻잎 장아찌, 무말랭이 무침 등을 곁들였다. 흑두부와 돼지고기, 무말랭이를 깻잎 장아찌 한 장에 넣어 싸먹었더니 고소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었다.

비지파전은 두부를 만들고 난 비지를 사용해 만든 것으로 고소한 비지와 각종 야채에 오징어를 넣고 흰콩과 검은 콩을 넣어 씹는 맛이 시중에 있는 다른 전들과는 차별화된 맛이었다.

청국장찌개는 흰콩과 검은 콩을 섞어 전통 방식 그대로 황토방에서 잘 띄운 청국장으로 만들어 구수한 맛이었다.

흑두부탕수육은 흑두부를 튀겨 탕수육 소스에 버무린 것으로 소스에도 흰콩과 검은 콩을 넣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음식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공업기반구조가 약한 전라도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청정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한 관광산업과 무공해 자연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흑두부의 원조로 자부하는 달맞이 흑두부는 화순에서 나고 자란 검정콩만을 사용해 만든 최고의 웰빙 음식이며, 전라도를 대표해 세계화할 수 있는 음식으로 지역 주민의 고부가가치를 올려줄 수 있는 음식임에 틀림없다. 외국의 요리경연대회에서도 우리 두부에 대한 관심은 높았기 때문에 검은콩으로 만든 두부는 더욱 시장 경쟁력이 있으리라 확신한다.

화순을 대표할 수 있는 흑두부, 흑두부의 재료인 검은콩을 이용한 산업화 전략을 연구해 보자.

먼저 검은콩 밭을 대규모로 경작하여 아이들의 체험학습장을 만들어 직접 콩을 갈고 단백질을 응고 시켜 두부를 만들어 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맑은 사평 계곡에 손을 씻게 하고 저녁에는 떠오르는 달을 맞으며 강강술래를 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다.

절에서 스님들이 먹던 귀한 검은두부가 한사람에 의해 흑두부라는 세상에 없던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이제는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밖으로는 이 고귀한 흑두부라는 음식을 식당에서 판매하는 것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만들어 전국으로 세계로 판매하여야 하며, 안으로는 검은콩 농장, 흑두부 체험 학습장, 가족과 학교 단위의 야영장 등 관광 인프라 구축의 핵으로서 거대한 흑두부 문화단지를 조성하고 외부 관광객을 유치하여 화순의 경쟁력을 살려내는 것이다. 요리연구가·광주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달맞이흑두부 양덕승 사장


"흑두부를 화순의 브랜드로 만들고파"

"두부를 만드는 게 아니라 빚는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정성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죠."

지난 1998년 달맞이 흑두부을 시작한 양덕승(49) 사장. 그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항상 귀농을 꿈꿨다고 한다.

그가 꿈꿔왔던 귀농은 단순히 농부가 되는 것이 아닌 농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가공해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이템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결국 친구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두부를 먹으며, '아! 이거다'싶어 무릎을 쳤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무슨 두부장사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처음엔 하얀 두부로 시작한 그는 두부의 딱딱함을 없애기 위해 전국을 헤매다 나름의 비법을 찾았고 초라한 가게에는 매일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송광사 주지인 현고스님을 만나면서 흑두부가 탄생했다.

양 사장은 흑두부를 장인정신으로 빚어낸다고 한다. 음식 만드는데 무슨 거창한 표현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삶의 질이나 건강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음식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의 꿈은 흑두부를 화순의 브랜드로 키워내는 것이다.

"화순에는 고인돌외에는 귀가 솔깃할 만한 브랜드가 없는데 이제 흑두부를 화순의 브랜드로 키워냈으면 합니다. 검정콩의 산지로 만들고 흑두부하면 화순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양 사장은 현재 검정콩 단지 조성과 흑두부 체험장 등을 구상중이며 이를 통해 고향인 화순이 발전하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주변 나들이- 학포당
학포당



호남화단 선구자 양팽손 선생 서재

화순군 동면 달맞이흑두부에서 자동차로 약 40분가량 달리면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쌍봉사 앞 마을에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 선생의 서재 '학포당'이 있다.

전남도 기념물 92호로 지정된 학포당은 조선 중종때 학자이며 서화가인 양팽손이 사용하던 서재다.

푯말에는 양팽손이 능성현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됐으나 화순 도곡면 월곡리와 이양군 쌍봉리 주민들이 서로 자신의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학포 선생은 조광조와의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중종때 사마시에 합격하면서 조광조와 인연을 맺게 됐다. 조광조가 역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고 장례조차 치룰 수 없게 되자 학포선생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제들을 시켜 그의 시신을 거둬 안장했다.

학포 선생은 중종 14년 기묘사화에 연루돼 파직한 뒤 고향인 쌍봉리에 내려와 학포당을 건립, 후학들을 가르치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제주 양씨 일가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선생은 서화에 능했으며, 호남화단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럼에도 학포 선생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의 작품들이 국내에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학포 선생의 작품 원본은 독일이나 일본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있다.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대부분 복사본이다. 작품이 남아있는 일본에서 학포 선생은 꽤나 유명한 인물이다.

학포당 마당에는 학포 선생 아들이 심었다는, 어림잡아도 500년은 족히 됨직한 은행나무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가지가 8개로 뻗어져 팔파손이라 불리는 이 나무는 학포 선생의 자녀(8명) 수와도 같다. 30년전 태풍에 가지가 하나 부러져 지금은 7개다. 가지가 부러진 뒤 곧바로 종손이 사망하자 후손들 사이에서 이 나무에 대한 신비감이 더해지고 있다.

지금의 학포당은 1920년 후손들이 원형을 살려 복원했다.

제주양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화순 능주 출신의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을 꼽는다. 그는 송흠(宋欽)의 문인으로 중종때 문과에 급제해 정언(正言)을 거쳐 조정암(趙靜庵)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으며, 중종4년 교리(校理)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기묘사화로 삭탈관직 당하고 고향에 은거했다.

그에게는 본처 소생으로만 5형제가 있었는데 둘째 응태(應泰)와 셋째 응정(應鼎)이 뛰어났다.

박뫼마을에 제주양씨들이 입향하게 된 것은 조선 명종때 문신이며 대학자인 송천 양응정(梁應鼎) 선생이 선조 5년(1571년)에 간신의 시기와 모함을 피해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 벼슬을 그만두고 처가마을인 이곳에 정착하면서 부터다.

호남의 멋진신문  무등일보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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