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보는 창

이은하의 '한반도 대운하' 노래

올소맨 2008. 3. 14. 10:43

독관처사(獨觀處士)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무서워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매를 무서워하고, 물 속의 고기가 물개를 두려워하고, 토끼가 사냥개를 겁내는 것처럼 떨리는 게 너무나 많았다.  세상에 섞여서 살게 되면 열 걸음을 걷다가 아홉 걸음을 넘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만 틀어박혀서 지내고 있었다. 

 

충묵선생(沖默先生)이 그런 독관처사를 찾아왔다.  난데없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나는 그대와 달리 무서운 것이 없다.  하늘의 위엄도 안 무섭고, 임금의 부귀도 안 무섭고, 불량배의 주먹도 안 무섭고, 호랑이의 으르렁거림도 안 무섭다."


독관처사의 '골을 지르는' 말이었다.  약이 오른 독관처사가 충묵선생의 말을 조목조목 따졌다. 


"그대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구나.  하늘이 노하면 뇌성벽력이 일고, 모래와 돌이 마구 날리고, 바다가 장님이 되고, 산은 귀가 먹는 법이다...임금이 노하면 눈서리가 내리고, 벽력이 일어나며, 멸족의 재앙이 내리는 것이다...불량배가 설치면 대낮에 살인이 일어나고, 저자는 피바다가 된다...호랑이가 굴을 나와서 이빨을 갈고 발톱을 울리면 누구라도 기가 질려서 얼이 빠지니..."
충묵선생 역시 조목조목 대답했다.

 
"내가 하늘을 속이지 않으면 하늘이 위엄을 부리지 않을 것이요, 임금에게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 임금이 노하지 않을 것이다.  불량배가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대로 말리고, 가랑이 밑으로 들어가 허심(虛心)하게 살아가면 그들이 나를 건드릴 까닭이 없다.  호랑이가 굴을 빠져나오면 함정과 그물이 있는데 뭐가 무서운가."

독관처사가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가 무서워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무서워하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

충묵선생이 말했다.

 
"물론 있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나의 턱 위, 코 아래에 붙어 있는 물건이다.  입술이 붙어서 열렸다 닫혔다 하는 문(門)과 같은 물건이다.  바로 나의 입이다.  입을 두려워하고, 입을 삼가면 처세하는 데 아무런 탈이 없다.  입은 몸을 망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옛 성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입을 두려워했다."

고려 때 선비 이규보(李奎報)가 쓴 '외부(畏賦)'에 나오는 얘기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입을 조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입을 조심하지 못했다가 망신살을 사는 사람이 종종 있다.  정치인 등 주로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그렇다.  말실수 때문에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노래로 먹고사는 가수도 여기에 포함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가수 이은하가 부른 '한반도 대운하'라는 노래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1000만년을 이어나갈 우리의 꿈이 담긴 한반도 대운하' 운운하는 노래다.

 
자신의 히트곡처럼 '아리송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네티즌의 뭇매가 심해지자 이은하의 소속사가 부랴부랴 사과를 하는 등 '진화'에 나서고 있다. 

'대운하' 노래는 민감한 시점에 나온 민감한 노래였다.  이은하는 졸지에 '정치 가수'가 되었다.  본인은 별 생각 없이 부른 노래라고 했지만, 운하가 들어설 곳에 땅을 사놓은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고 있다.  운하 때문에 가뜩이나 갈라져 있는 국론을 더욱 쪼개놓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몇해 전에는 가수 조영남이 '친일' 때문에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조영남은 이른바 '야스쿠니신사'라는 곳을 가보았더니 일반 신사와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맞아죽을 각오'로 책도 썼다고 했다.  덕분에 맡고 있던 프로에서 '중도하차'해야 했었다. 

이규보의 지적처럼 입은 하늘보다, 임금보다, '조폭'보다,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가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입으로 먹고사는 가수가 입을 조심하면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지.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