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망할 무렵, 희한한 일들이 줄을 이었다. '삼국사기'를 뒤져보자.
"…여우가 떼를 지어 궁중으로 들어왔다. 태자궁의 암탉이 작은 새와 교미를 했다. 사비 강에 큰 고기가 나와서 죽었는데 길이가 세 길이나 되었다. 키가 18척이나 되는 여자의 시체가 떠내려왔다. 궁중에서 느티나무가 우는데 사람의 곡성과 같았다. 서울의 우물이 핏빛으로 변했다.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무 위로 기어올랐고, 사람들이 놀라 달아났다. 비바람이 사납게 일어났다. 천왕사와 원양사 두 절의 탑에 벼락이 떨어졌다. 개처럼 생긴 사슴 한 마리가 궁성을 향해 짖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삼국사기'는 천수백 년 전의 '과거사'를 기록한 것이다. 사진 들여다보듯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천재지변과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나라가 뒤숭숭해졌음을 알 수 있다. 백제가 망할 조짐이었다.
당연히 민심이 흉흉해졌다. 그러나 의자왕은 민심을 알 수 없었다. 이미 충신 성충이 바른말을 하다가 하옥된 뒤였다. 감히 임금에게 뭐라고 말할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백제는 역사에서 사라져야 했다.
가랑비에도 옷이 젖는다고 했다. 사건사고가 잦아지면 제아무리 '초강대국'이라고 해도 흔들릴 수 있다. 옛 소련이 그랬다. 사회가 해이해지고, 연방이 해체되고 말았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의 원자로가 폭발했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핵 참사였다. 8월 31일에는 소비에트 정기여객선 나히모프 제독 호가 흑해에서 침몰, 400명의 인명이 손실되었다. 10월 6일에는 16개의 다탄두 핵미사일이 탑재된 소비에트 핵 잠수함이 대서양 중앙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1988년 12월에는 소비에트 트랜스카즈의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나 2만 명 이상이 죽고 전 지역이 괴멸되었다. … 1989년 6월 4일에는 시베리아의 수송관에서 누출된 가스가 폭발하여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두 대의 여객열차를 날려버렸는데, 그 날은 휴일이어서 많은 어린이를 포함하여 8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 <세계현대사 Ⅲ, 폴 존슨 지음, 한마음사>
소련연방 해체는 '남의 나라 일'이라고 치자.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뼈아프고 부끄러운 '과거사'가 있다. 그것도 불과 10년 전의 '과거사'다. 온갖 사건사고가 벌어지더니 나라마저 기우뚱했었다.
*청주 우암 상가 아파트 화재 *구포 무궁화 열차 전복 *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서해 훼리호 침몰 *아현동 가스 폭발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유람선 화재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김영삼 정권은 걸핏하면 '특단의 조치'를 외쳤다. 공무원은 다치지 않으려고 엎드려서 숨을 죽였다. '복지부동'으로 일관했다. 경제위기 얘기가 나와도 귀를 막았다. "우리 경제규모로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결국 'IMF 국치'를 맞았다. 그 충격이 오죽했으면 왜란(倭亂), 호란(胡亂)처럼 '환란(換亂)'이라고까지 했다.
지금 또 예사롭지가 않다. 사건사고가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에,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에, '국보 1호' 방화사건까지 줄줄이 터지고 있다. 숭례문과 함께 국민의 600년 자부심도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해이해진 나사는 여전히 풀려 있다. '네 탓 타령'뿐이다. 내 잘못은 없다며 '핑퐁'이다. 어쩌면 나라가 또 한바탕 휘청거릴 조짐이나 아닐까. 은근히 불안해지고 있다.
차기 대통령마저 실망스럽다. 국민 모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는 '한가한 말씀'이나 꺼내고 있다. 국민의 허탈감을 전혀 모르고 있다. '가림막'으로 국민의 눈을 가려놓고 다시 지으면 그건 숭례문이 아니다. 21세기의 초현대식 건축물일 뿐이다. 그 건축물에서 추락한 자부심을 되살리고 역사를 되새길 수는 없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
'세상을보는 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인음식'과 중국 여(女)황제의 '청군입옹' (0) | 2008.02.22 |
---|---|
벼락과 대포알 보다 지독한 '등록금 폭탄' (0) | 2008.02.18 |
'우리 강아지'의 스트레스 (0) | 2008.02.11 |
노무현 대통령, 김신일 교육부총리 사표 수리 (0) | 2008.02.07 |
설날 까치가 '까착까착' 울면... (0) | 2008.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