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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어떤 사나이가 9시간 동안 양 866마리의 털을 깎아 세계신기록을 세웠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회의 규정대로 중간에 4차례, 모두 3시간을 쉬면서 깎았다고 한다. 쉰 시간을 빼면 6시간 동안에 866마리의 털을 깎은 셈이다. 계산기를 눌러보니 한 시간에 144마리였다. 1분에 2마리가 넘는다. 2.4마리다. 불과 30초도 안 되는 사이에 양 한 마리씩 털을 해치운 것이다.
이 우승자는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 "정해진 시간이 다 될 때까지는 힘든 줄도 모르고 털을 깎기만 했다"고 밝혔다.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해외토픽'이구나 하고 넘어갔었다. 그렇지만, 나중에 느꼈다. 털을 깎인 양이 얼마나 심한 스트레스를 느꼈을 것인지.
양의 스트레스는 집에서 기르는 '우리 강아지'를 보고 알게 되었다. 몸무게 3kg인 조그맣고, 하얀 귀여운 강아지다.
'우리 강아지'는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반갑다며 뱅뱅 돈다. 두어 시간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꼬리를 말아 올리고 10바퀴쯤 돈다. 한나절을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더욱 반가운지 20바퀴 가까이 돈다. 마치 주인과 헤어져 있던 시간과 비례해서 돈다. 똑똑하고 영리한 강아지다.
그 강아지가 어느 날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왔는데도 시큰둥했다. 동그랗게 웅크리고 앉아서 꼬리만 두어 번 흔들더니 곧 모르는 척했다. '우리 강아지'답지 않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줘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안아주려고 했다. 그 순간 강아지는 주인의 손을 냉큼 물었다. 제법 따끔했다. 야단을 치다가 강아지의 기분을 알아차렸다. 강아지는 몸에 달려 있던 하얀 털이 모조리 잘려나가 있었다. 털이 깎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강아지는 이틀이나 지나서야 주인이 돌아오면 또 반갑다고 뱅뱅 돌았다. 하지만 평소처럼 돌지는 않았다. 조금 돌다가 멈췄다. 다시 10바퀴, 20바퀴쯤 도는 데까지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강아지의 스트레스는 일주일이나 지속되었다.
이후부터는 '애견 미용실'을 가급적이면 덜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강아지 털은 길게 자라면 깎아줘야 했다. '우리 강아지'는 못된 주인 덕분에 주기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주인을 따라 산책하다가 동네 '애견 미용실' 근처를 지나게 되면 끙끙거리며 버티는 습관까지 생겼다.
양도 마찬가지였을 것이 틀림없다. 30초도 안 되는 사이에 털을 모조리 깎이면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깎는 사람은 기록을 세우려고 서둘러댄다. 그 바람에 양은 몸에 이곳저곳 상처까지 입게 된다. 방울방울 피를 흘린다.
그렇게 '학대'하고도 사람들은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신기록이라고 뽐내고 있다. 양의 스트레스 따위는 아랑곳없다.
그런데 귀여운 '우리 강아지'가 앞으로는 몸 속에 쇳조각이 박힌 채 살게 생겼다. 서울시가 애완견 몸 속에 마이크로 칩을 삽입, 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마이크로 칩은 길이 1cm, 두께 2mm 정도의 크기다. 주사기로 개의 목덜미 근육과 가죽 사이에 주입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린다고 했다.
서울시는 애완견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별다른 문제점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강아지'의 경우는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앓게 되었다. 털이 깎여도 일주일이나 스트레스를 받을 정돈데 몸 속에 '이물질'이 박혀 있으면 훨씬 심할 수밖에 없다. 몸을 비비고 뒹굴다가 포기하고 아마도 체념상태에 빠질 것이다.
'나쁜 주인'을 만난 강아지는 더 큰일이다. 강아지를 몰래 버리면서 주인을 찾지 못하도록 목덜미에 박힌 마이크로 칩을 파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버려진 강아지는 목덜미에 상처 입은 불쌍한 모양이 될지 모른다. 버림받은 것도 서러운데 목덜미에 흉터까지 달고 있어야 한다. 서울시를 원망하고, 무정한 주인을 저주할 것이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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