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이야기

싸이, 군대 다녀와라!!

올소맨 2008. 2. 12. 20:51
[학부모님의 이야기] '싸이, 군대 다녀와라!!'^^
 
글쓴이: 진서 아부지 조회수 : 71   07.12.29 06:22 

 

 

 

 

"싸이, 군대 다녀와라!!"

2007.12.15, 이OO
 

군대생활은 고달팠다.  배를 타는 수군(水軍)은 더욱 그랬다.  조선 초인 태종 때 군대에 끌려온 수군이 있었다.  오랫동안 물 속에서 작업을 하는 바람에 허리 아래가 모두 얼어붙었다.  물 밖으로 기어 나와 누웠지만, 거의 죽게 되었다. 


길 가던 스님이 불쌍하다며 미음을 끓여줬다.  수군은 미음그릇을 받아들고 넋두리했다.  "내가 이걸 먹고 목숨을 이어서 또 이 짓을 할 것인가."  그릇을 내던져버리고 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종 때가 되었다.  나라를 건국한지 100년 가량 지나는 동안 이렇다할 전쟁이 없었다.  군인을 동원할 일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100년의 세월을 견딘 궁궐과 관청 건물이 제법 낡고 말았다.  보수공사를 할 필요가 생겼다.  군인이 가장 만만했다.  써먹을 일 없던 군인을 역졸(役卒)로 동원했다.  군인은 공병(工兵)으로 전락했다. 

 

군인은 밤낮도 없이 공사판에 동원되었다.  지겹고 힘들었다.  차츰 요령이 생겼다.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대신 일을 시키게 되었다.  이를 대립(代立)이라고 했다.  물론 비공식적이었다.  그래도 대립은 점점 확산되었다.  대립을 직업으로 하는 대립인(代立人)까지 생겼다. 

 

너도나도 대립인을 사서 군역(軍役)을 피했다.  대립인의 몸값도 따라서 치솟았다.  처음에는 한 달에 베 80필 정도였지만, 곧 100필을 돌파했다.  관리들이 대립인을 사서 군역을 피하라고 '꼬시기도' 했다.  중간에서 뜯어먹기 위한 수작이었다. 

 

대립의 폐단이 심해지자 대책이라는 것이 나왔다.  대립인의 공정가격을 정해 아예 '합법화'한 것이다.  돈이 통용되지 않던 시절이라, 포(布)를 받고 군역을 빼줬다.  이를 '방군수포(放軍收布)'라고 했다. 

 

약삭빠른 관리들은 '방군수포'를 또 이용해먹었다.  포 얼마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배정'한 것이다.  배정된 포는 당연히 관리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혼자 먹으면 탈이 날 우려가 있었다.  고위층에게 상납도 했다.  상납이 많아지면서 포를 바치라는 요구도 늘어났다. 

 

백성은 죽을 판이었다.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백성이 생겼다.  그러면 일가친척에게 도망친 백성의 몫까지 물도록 했다.  땅이라도 팔아서 내야 했다.  몇 차례 내고 나면 남는 땅은 '제로'가 되었다.  빈털터리가 살아갈 방법은 남의 노비가 되는 길뿐이었다.  노비가 되면 병역도 면제되었다.  군인 숫자는 이렇게 슬금슬금 줄어들게 되었다. 

 

병력 부족을 느끼게 된 나라에서 궁여지책을 냈다.  '제승방략'이었다.  전쟁이 날 경우, 해당 지역에서 일단 소집 가능한 장정만을 모아서 군대를 편성하도록 했다.  그러는 사이에 중앙에서 순변사나 방어사를 파견, 지휘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럴 듯해 보였지만 '제승방략'은 소규모 전투에서나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대규모 전투에서는 쓸 수 없었다. 

 

그 모순은 임진왜란 때 드러나고 말았다.  나라에서는 '제승방략'에 따라 이일(李鎰)을 순변사로 임명했다.  영남지방으로 달려가서 왜적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당장 데려갈 300명의 병사조차 없었다.  3일 동안 헤맨 끝에 간신히 60명을 긁어모아 데려갈 수 있었다.  현지에서 모은 병사도 한심했다.  훈련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오합지졸이었다.  싸움이 될 수 없었다.  임금마저 수도 서울을 버리고 피난하는 신세가 되어야 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許筠)은 군사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렇게 개탄했다. 

"천하에 군대가 없는 나라는 있을 수 없다.  군대 없이 어떻게 적을 막겠는가.  그러나 군대 없이 수십 년 간 나라를 보존한 나라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다."

 

이율곡의 '10만 양병설'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허균의 '여진 침입론'은 덜 알려져 있다.  훗날 청나라를 세우는 여진족이 침입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호란'을 예측, 대비책을 제시했던 것이다. 

 

허균은 국방책으로 "공사천예(公私賤隸)는 물론 재상의 아들이나 선비 등 모든 특권계급에게도 병역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 주장을 받아들여 '끗발' 있는 사람도 모두 군대를 보냈더라면 호란 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30)가 정식으로 군복을 입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돌이켜본 '과거사'다.  싸이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면서 정상 근무를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현역 입대할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체복무'다 뭐다 하면서 병역의무를 빼먹는 청년들이 많은 현실이다.  싸이 본인으로서는 할 말이 많겠지만, 허균을 다시 한번 개탄하도록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