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때 태두남(太斗南·1486∼1536)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후손이다.
태두남이 어느 조용한 밤에 등잔불 밑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난데없이 쥐가 구멍에서 튀어나와 이리저리 기어다녔다. 꾀가 간교하고 욕심이 가득했다. 부엌에서 남은 음식을 훔쳐먹더니 자루에 담겨 있던 곡식까지 모조리 물어갔다. 그 해독이 '마침내 약탈과 대등할 지경'에 이르렀다.
참다 못한 태두남이 쥐에게 호통을 쳤다. 심하게 꾸짖었다.
"개는 도둑을 막고, 양은 제수(祭需)가 된다. 소와 말은 그 힘으로 사람을 위해 일을 한다. 그러나 너, 쥐라는 놈은 조금도 도움되는 것이 없고 오로지 해독만 끼치는구나.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오면 너는 반드시 멸족할 것이다."
쥐는 태두남의 질책을 듣고 겁을 잔뜩 먹었다. 그래도 할 말은 했다. "내 잘못을 인정하겠다. 하지만 이 나라 조정에는 나보다 훨씬 죄 많은 쥐가 가득 차 있다. 그 종류를 따져보면 ▲마음을 갉아먹는 쥐 ▲사직을 갉아먹는 쥐 ▲고을을 갉아먹는 쥐 등이다. 왜 큰 죄인을 버려 두고 작은 허물만 꾸짖는가?"
쥐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태두남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쥐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탄식했다.
"물건을 축내는 근심은 사소하지만 나라를 좀먹는 것은 피해가 크다. 외적의 침입은 물리치기 쉽지만 내부의 간신은 제거하기 어려운 법이다. 물건 속에 있는 쥐는 비록 미워도 모질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 속에 있는 쥐는 독침보다도 참혹한 것이다.…"
쥐는 왜 사람의 미움을 살까. 애써 가꾼 농작물을 해치기 때문이다. 농경민족에게는 쥐처럼 골치 아픈 짐승이 없다. 쥐는 아득한 설화시대 때부터 얌체 짓만 하는 짐승이었다. 옛날에 하느님이 뭇 짐승에게 말했다. 설날 아침에 세배를 하러 오라고 했다. 빨리 세배하는 짐승에게는 '선착순'으로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모두들 뜀박질에는 자신이 있었다. 다만, 걸음이 느린 소는 좀 고민이었다. 소는 남보다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남들이 잠들어 있는 섣달 그믐날 밤에 길을 떠났다. 눈치 빠른 쥐가 그런 소를 놓치지 않았다. 소잔등 위에 잽싸게 올라탔다.
소는 일찍 출발한 덕분에 동이 틀 무렵 왕궁 앞에 도착했다. 막 문을 열려는 순간에 쥐가 날쌔게 소잔등 위에서 뛰어내렸다. 쥐가 1등, 소는 2등이었다.
다른 짐승들은 설날 새벽에 일제히 출발했다. 호랑이가 '비호'처럼 달려왔지만 이미 도착한 쥐와 소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3등이었다. 토끼는 도중에 낮잠을 잤다가 4등.… 유독 고양이만 등수에 들지 못했다. 쥐가 날짜를 일부러 틀리게 알려줬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출발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고양이는 이 때부터 쥐를 원수로 여기게 되었다.
쥐는 귀찮은데다 하찮은 존재이기도 했다. 좀도둑을 서적(鼠賊)이라고 했다. 소인배를 서배(鼠輩)라고 했다. 쥐꼬리라는 말도 있고, 쥐뿔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좋은 쥐를 찾기도 했다. 쥐의 왕성한 번식력과 부지런함을 높게 평가했다.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부자로 산다고 생각했다. 쥐를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꼽기도 했다. 어려움이 풀려서 쥐구멍에 볕이 들기도 했다.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엄청난 쥐까지 속속 출현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괴력의 '마이티 마우스'가 태어났다. 고양이를 만나도 무서워하지 않는 '깡다구 쥐'가 나왔는가 하면, 암에 걸리지 않는 쥐도 생겼다.
곧 쥐띠 해인 무자년(戊子年) 새해가 된다. 원래는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되어야 하지만, 요즘은 양력으로 사는 세상이니까 몇 밤만 자고 나면 무자년이다.
새 대통령 당선자도 무자년을 맞으며 새 판을 짜고 있다. 아무쪼록 조선 선비 태두남이 걱정했던 나쁜 쥐를 소탕하고, 좋은 쥐가 잘 되도록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국민이 그동안 나쁜 쥐 때문에 고생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달리 '경제 대통령'이라고 해서 국민도 기대를 걸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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