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탁현이라는 곳에 정육점이 있었다. 정육점 주인은 힘이 장사였다. 자신의 힘을 자랑해보고 싶었다. 무게가 천 근이나 되는 바위를 정육점 앞에 옮겨다 놓고 팻말을 세웠다. "이 바위를 들어올리는 사람은 내 가게에서 고기 한 칼을 베어가도 무방함."
천 근 바위를 감히 들어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정육점 주인을 제외하면 그 무거운 바위를 들어올리기는커녕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마침내 '천하장사'가 나타났다. 어느 날 정육점 주인이 외출했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녹두를 산더미처럼 실은 수레를 끌고 정육점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녹두장수였다.
녹두장수는 팻말을 보더니 수레를 멈췄다. 그리고 그 천 근 바위를 번쩍 들어올렸다. 대단한 힘이었다. 녹두장수는 그 자리에서 서너 차례 돈 다음 10여 걸음을 걸어가서 바위를 내려놨다. 가게를 지키던 정육점 점원에게 바위를 가리키며 팻말에 적혀 있는 대로 고기를 베어가겠다고 했다.
녹두장수는 100근이 넘음직한 큼직한 고기를 한 칼에 베어냈다. 뼈를 발라내고 살코기만 수레에 실은 채 유유하게 사라졌다.
점원에게 얘기를 전해들은 정육점 주인은 노발대발했다. 수염까지 빳빳해졌다. "감히 어떤 자가 나타나서 힘 자랑을 했는가" 호통쳤다. 녹두장수가 사라졌다는 방향으로 뒤쫓아갔다. 본때를 보일 작정이었다.
녹두장수는 시장 한구석에 녹두를 풀어놓고 있었다. 그 얼굴이 붉고, 체격은 당당했다.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기가 죽을 정육점 주인이 아니었다. 다짜고짜 녹두 한 주먹을 오른손으로 집더니 꾹 눌러서 가루를 만들어버렸다.
다시 왼손으로 녹두 한 주먹을 집어서 또 가루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시비를 걸었다. "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물건을 산다. 살짝 눌러도 가루가 되는 녹두를 어떻게 먹으라고 파는가?"
발끈한 녹두장수가 주먹을 불끈 쥐며 일어섰다. 곧바로 싸움이 벌어졌다. 호랑이처럼 다투는 바람에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두 사람은 두 시진이 넘도록 엎치락뒤치락했다. 두 사람 모두 천 근 바위를 들어올리는 '천하장사'였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 싸움판에 난데없이 돗자리장수가 끼여들었다. 돗자리장수는 두 귀가 어깨까지 내려오고, 두 손은 무릎까지 닿았다. 조금 희한한 모습이었다. 몸집도 크지 않았다. 싸움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도 어딘가 기품이 있어 보였다.
돗자리장수는 구경꾼을 헤치고 긴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싸우던 두 사람을 간단하게 갈라놓았다. 두 사람은 신비한 힘에 눌리기라도 한 듯 싸움을 그쳤다. 범상치 않은 능력이었다. 구경꾼들은 돗자리장수에게 박수를 보냈다.
싸움을 말린 돗자리장수는 자기를 소개했다. 유비(劉備)라고 했다. 정육점 주인은 장비(張飛), 녹두장수는 관우(關羽)였다. 세 사람은 도원(桃園)에서 의형제를 결의했다. '삼국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참이었다.
이 고사를 사람들은 '일룡분이호(一龍分二虎)'라고 했다. 한 마리의 용이 두 호랑이의 싸움을 말렸다는 뜻이다. 세 사람이 만났던 자리에는 '삼의묘(三義廟)'를 세워 보존했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유비가 싸움을 말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중에 천하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삼국지' 이야기 자체도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을 화해시킨 유비는 '용'이었다. 통이 컸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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