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조선에 향락문화와 섹스문화를 보급하는 데 열을 올렸다. '사창가'를 서둘러서 설치했다. 조선 사람과 장사하면서 물건값을 아편으로 계산하기도 했다. 많은 조선 사람을 아편쟁이로 만들어놓았다. 조선 사람을 모조리 타락시켜버려야 손쉽게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속셈을 단재 신채호는 일찌감치 간파했다. 우리 민족을 '연애삼매경(戀愛三昧境)'에 빠뜨려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려는 얄팍한 수작이라며 반발했다.
당시 글쟁이들은 '음란소설'을 많이 쏟아냈다. "살이 녹도록 뼈가 저리도록 남녀 학생이 두 입을 마주 물고 요런 재미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식"의 연애소설이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썼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제의 '작전'에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 신채호는 이른바 신소설작가라는 그런 글쟁이들을 가차없이 꾸짖었다.
"…일 원 내지 오 원의 소설책이나 팔아 한 번 배부름을 구하려는 문예가들이 무슨 예술가냐.… 이 원 삼 원의 값비싼 소설을 지어놓고 민중문예라 부르짖음도 얄미운 짓이거니와, 민중생활과 접촉이 없는 상류사회의 부귀나 남녀의 연애정사를 그리는 장음문자(奬淫文字)는 더욱 문단의 수치라.…"
신채호는 글쟁이들의 '장음문자'를 경계했다. '음란을 키우고 장려하는 글'이라며 우려했다. '노예 문학'이라고 꼬집었다. 조선을 '일대 노예지옥'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글쟁이가 쓸 글은 따로 있다고 지적했다.
"소설은 국민의 나침반이라.…소설이 국민을 강한 데로 이끌면 국민이 강해지며, 소설이 국민을 약한 데로 이끌면 국민이 약해지며, 바른 데로 이끌면 바르고, 나쁜 데로 이끌면 나빠지나니, 소설가 된 자는 마땅히 스스로 조심할 바이거늘, 근일 소설가들은 음란(淫亂)을 가르치는 것으로 주지(主旨)를 삼으니 이 사회가 장차 어찌 되리오.…"
TV는커녕, 라디오조차 드물던 시절이었다. 서민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신문과 소설 등이 고작이었다. 따라서 소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신채호는 그 막강한 소설이 '장음문자'를 마구 찍어내는 것을 보며 민족의 장래를 염려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 소설의 자리를 TV가 차지하고 있다. 소설 따위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TV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 TV가 야릇한 방송을 일삼고 있다. 낯뜨거운 장면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행사 때 연예인이 나오면 대체로 반나체다. 그래야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에도 '장음문자'가 난무하고 있다. 대단치도 않은 것이 확대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TV는 집집마다 보급된 지 오래다. 컴퓨터 역시 웬만하면 한두 대씩 갖추고 있다. 그래서 보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없다.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나훈아가 기자회견을 했다. 나훈아는 언론의 '장음문자'에 불만을 터뜨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났다고 했다. '3류 소설'이라고 했다. "나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니 마음대로 써봐라"고 했다. "시집도 안 간 처녀들을 죽이지 말라"는 하소연도 했다.
또 어떤 방송인도 한마디했다는 보도다. 어떤 가수와의 스캔들에 관한 소문을 언급하면서 자신도 기자회견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우려를 표명했다. "아침 일찍 TV를 틀었더니 탈선하는 주부들 얘기가 너무 공공연하게 나오더라"고 했다. KBS 2TV를 시청했다는 보도다. '생방송 세상의 아침'이 '위기의 주부들, 애인 만들기 백태'라는 주제로 불륜 당사자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방송했다고 한다.
일본이 뒤늦게나마 '성공적인 작전'이었다고 손뼉을 칠 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연애삼매경'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나라의 장래가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TV와 인터넷뿐 아니다. 이 나라의 언론 모두가 생각해볼 일이다.
이정선 기자 (csnews@cs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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