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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화와 스토리텔링”

올소맨 2011. 7. 11. 22:23

『한국신화와 스토리텔링』은 김의숙 ․ 이창식이 공동으로 저작한 책으로 구비 전승인 신화의 가치와 본질을 밝혀서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原資料를 다시 연마하는 스토리텔링의 방법, 더 나아가 문화 콘텐츠화하는 방법을 보여 주고 있다. 제1부는 신화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론의 집합이고, 제2부는 한국의 신화 중에서 기본이 될 만한 신화자료를 분류하여 보여주고 있다.

내가 한국 신화에 대한 책을 집어든 것은『카오스, 가이아, 에로스』를 읽고 나서였다. 수학자가 쓴 역사서, 오르페우스적 삼위일체라는 메타패턴을 찾아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는 역사의 맥을 찾아가는 저자에게서 “우리 역사에 있어 메타패턴은 없는 걸일까?”하는 생각에서의 관심과 스토리텔링이라는 생소한 용어 때문에 집어든 책이었다.

새로운 용어를 보면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쩌면 나의 만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니 더 열심히 독서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앎이 부족함에도 다 아는 것처럼 어리석음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내가 보이는 세계의 지식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은 세계의 앎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어째든 한국 신화에게서 보다 높은 차원의 교훈과 신화의 원형을 찾는다면 한국 신화가 고대 희랍이나 로마신화보다 못할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 얼마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반지의 제왕』이나 『헤리포터』시리즈도 신화의 원형에서 그 소재를 찾았다고 하니 신화의 활용으로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되는지 그 힘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이러한 재창조작업이다. 스토리텔링이란 생산자에 의해 창작되거나 기존에 있던 이야기를 수용자의 욕구충족을 위해 효과적인 담화형식으로 가공되는 것을 말하며, 오늘 날에는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은 물론이고 기업광고 전략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디지털스토리텔링을 위해서는 문학적 상상력, 예술적 심미안, 공학적 기술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는 먼저 소재 발굴이 필요하다. 신화는 이러한 소재를 찾아내는 원천이 된다. 조상의 삶속에 녹아있는 지혜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흔히 무속인의 巫歌 속에 전승되어온 자료이기에 단지 미신이라고 치부하지만 그 속에는 무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숨겨져 있다. 예를 들면 동서남북의 색깔을 나타냄에 있어 스며든 오행사상이 그렇다. 동방의 목은 청색, 서방의 금은 백색, 남방의 화는 적색, 북방의 수는 흑색을 상징하고 중앙의 토는 황색을 상징한다.

계절로 보면 목은 봄이요, 화는 여름이요, 가을을 금이며 겨울은 수다. 목은 차오르는 만물의 소생을, 화는 불길처럼 번지는 형상을, 금은 된서리 내려 영근 곡식을 거둬들이고 쭉정이는 버리는 심판의 기능을 담당한다. 겨울은 만물이 근원으로 돌아가 휴지기를 거친다. 나무는 잎을 거두고, 뿌리에 물기를 저장하며, 곡식을 씨앗을 남겨 생명을 보존한다. 이 모두를 포용하는 황색은 오행에 있어 상극을 해소하고 연결시키는 다리역할을 한다.

상생원리는 수생목하고 목생화하며, 화생토하고 토생금이며, 금생수이다. 계절을 나타내는 오행으로 겨울은 봄을 낳게 하고 봄은 여름을 만드나 여름이 바로 가을을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화극금이기 때문이다. 중성인 토가 화와 금의 중간에 자리함으로써 여름과 가을을 연결한다. 오행을 알고 나면 주역은 이해하기 쉽다.

이러한 이치들이 무가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스며있음을 발견하곤 무가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인식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는 단군신화나 박혁거세나 김알지의 난생설화 정도이나 창조기원신화, 건국신화, 씨조신화, 종교신앙신화, 일반신화로 구분할 수 있으며, 창조기원신화도 천지자연기원신화, 인류기원신화, 동식물기원신화, 문물기원신화로 나눌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양한지.....

천지자연신화로는 천지왕본풀이, 창세가, 조판가, 설문대할망, 장길손이 있고, 인류기원신화로는 하느님의 인간창조신화, 미륵님의 인간창조신화를 들 수 있다고 한다. 동식물 기원신화로는 개다리, 닭벼슬, 돼지코..... 등등, 문물기원 신화로는 이승과 저승, 수의와 명정....등등 많아서 생략...., 건국신화로는 고조선, 고구려, 신라, 가락국, 탐라국, 후백제, 고려 등이 있고, 씨조신화로는 김알지, 석탈해, 고․부․양, 평강 채씨가 있다고 한다.

종교신앙신화로는 이차돈의 순교, 53불과 유점사 창건..등이 있고, 무속신화로는 군웅본풀이, 성주본풀이, 지장본풀이, 원천강본풀이, 세경본풀이, 차사본풀이, 세민황제본풀이, 삼신할머니본풀이, 이공본풀이, 삼공본풀이, 서귀포당신본풀이, 조왕본풀이, 오구본풀이, 제석 본풀이 등이 있고, 일반신화로는 치우, 도깨비, 손돌바람, 영동할머니, 금강내기, 연오랑세오녀, 김유신, 처용량과 처용가, 백제의 망조, 단종, 심화요탑, 턱이없는 이메탈, 측신 등을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다. 이것을 스토리텔링한다면 고대 로마․희랍신화보다 못할 이유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신화가 남을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조상의 지혜가 삶속에 녹아내림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토템과 샤머니즘 사상과 무관할 수 없다 할 것이다. 표의문자인 한자에는 뜻이 있다. 한자의 “巫”를 파자해보면 하늘과 땅 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사람이 무자의 형상이다. 즉, 하늘과 땅(二) 사이에 가로막대ㅣ가 있고 그 사이에 사람人이 둘이 있는 형상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당이라고 천대하던 무속인들도 알고 보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자, 즉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간의 위치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기독교나 불교 등의 고등종교도 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신화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발견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스토리텔링을 이룰 때 우리의 전통가치도 살아나고 문화브랜드의 가치도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의 사대주의, 사상의 사대주의 속에 매몰된 우리의 현주소...서양에는 통합을 향해가고 있는데 우리의 가치는 분리되고 분열되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인문학의 공학의 접근도 단지 기술적임에 국한된다. 그 사상의 깊숙한 근저에 이름이 아니라 표면적인 기술이 인문학에 실용적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인의 종합적이고 경계가 없는 탈 학문적인식이 부러운 까닭이다. 그렇지만 신화의 원형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있음에 희망을 걸어 본다.

재미와 교훈이 곁들여진다면 한없이 정서에 와 닿는 우리의 것! 우리의 들숨날숨 속에 어머니의 숨결 같고 아버지의 숨결 같은 그 깊은 정서에 남아있는 내 가슴의 영혼의 자락들! 그것은 조상들이 이 땅에서 살아왔고,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들이 살아가야할 이 땅에서 꽃피운 정신과 문화를 전승하여 재창조한다면, 문화브랜드도 높아질 것이고 한국적 가치가 더욱 빛난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새로운 세기의 문명 출발점에 서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생각하면 아쉽고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어인 까닭인가. 하지만 꽃피울 날이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비빔밥 문화를 가진 우리이기에 혼합된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민족임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신화창조! 그것은 신화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 가야하는 의무임을 생각해 본다. 한국신화와 스토리텔링을 읽으면서 떠올린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