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道
임도(林道). 숲을 조성하고 관리하기 위해 산림청이 계획해 만든 도로다. 목재의 반출로이면서, 화재 땐 소방차 진입로가 된다. 이처럼 실용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임도가 최근엔 숲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거니는 길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 ▲ 천천히 숲길을 따라 걸으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 나무가 내뿜는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 몸이 저절로 치유되는 느낌이다.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wanfoto@chosun.com
◆옥화자연휴양림 임도
지난 4일 아름답다고 소문난 충북 청원군 미원면 임도를 찾았다. 미원면 임도는 해발 400m 남짓한 산지에 조성된 옥화자연휴양림 안에 있다. 휴양림 입구의 관리사무소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니, 15분도 되지 않아 울창한 숲에 다다랐다.
임도를 걷는 것은 등산보다는 산책에 가깝다. 경사가 높은 등산로를 오르면 앞사람 뒤꿈치만 보고 걷기 일쑤지만, 오르락내리락 임도를 걸으면 야생꽃과 나무를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옥화자연휴양림은 1920년대 나무 종자 개발을 위한 채종림(採種林)으로 조성된 덕에 나무 종류가 다양하다. 편백나무 아래 서서 향기를 맡으니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 번에 씻기는 느낌이다. 편백나무에 다량 함유된 피톤치드(phytoncide)는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살균 물질로, 아토피 피부염에도 효과가 좋다고 한다.
헛개나무 잎을 작게 찢어 입에 넣으면 씁쓸하면서도 싸한 향기가 입안에 머무른다. 아름드리 참나무·전나무·소나무가 드리운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7월의 따가운 햇살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다.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나무 중간 중간 딱따구리의 집을 찾아보는 것도 작은 재미다.
수령 90년의 '스트로보 잣나무' 군락이 하늘로 곧게 뻗은 산림욕장은 미원면 임도의 하이라이트다. 벤치에 앉아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짙고 빽빽한 잣나무 잎이 하늘을 밑에서 뒤덮었다. 8년간 휴양림을 지켜온 '산지기' 박흥서(58)씨는 "마음에 드는 나무를 정해서 대화를 나눠보라"며 그만의 '숲 감상법'을 알려줬다.
중간중간 갈림길이 나오지만 어느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곧 다시 만나게 된다. 40~50분 남짓 걸으면 산속에 조성한 거대한 사방(沙防)댐을 볼 수 있다. 새파란 물이 가득 차 있는 호수가 인상적이다. 댐을 지나 300m 정도 내려가면 시원한 계곡물을 모아 만든 수영장이 나온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서늘한 기운이 몰려온다. 피서지로 적격이다.
1시간짜리 임도 산책이 아쉽다고 생각되면, 숲 바깥쪽으로 도는 외곽 순환 임도를 걸으면 된다. 2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 다소 가파른 경사가 나타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등산 초보자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쉬운 코스다.
옥화자연휴양림의 나무에는 일절 약을 치지 않아 밤마다 반딧불이가 찾아온다. 캄캄한 숲 속에서 흩날리는 반딧불은 또 다른 장관이다. 옥화자연휴양림에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8시 산지기가 안내하는 야간 숲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문의 (043)297-3424.
- ▲ 유명산자연휴양림 임도에 피어 있는 큰까치수염(위)과 산수국(아래).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임도를 걷는다는 것은 알던 산도 낯설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경기도 가평군 유명산도 임도를 따라 걸었을 때 처음 만난 산처럼 새로웠다.
유명산자연휴양림 주차장 옆의 다리를 건너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세 갈래 갈림길이 나온다. 왼편 계곡 방향으로 좁게 나 있는 길은 등산로고 오른쪽 넓은 길은 임도다. 포장된 임도를 따라 100m 정도 걷다 보면 좁게 뻗은 숲 체험로를 만날 수 있다. 바닥에 나무를 깔아놓아 제법 운치가 있다.
숲 체험로에 들어서니 풀 향기가 코를 찌른다. 나무에는 제각각 이름표가 붙어 있다. 가래나무, 산뽕나무, 소태나무, 졸참나무, 개살구나무…. 입으로 소리 내어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정겹다.
체험로 주변엔 야생화도 피어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꽃은 산수국. 꽃술인지 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보랏빛 꽃 주변으로 생식능력이 없는 하얀 색깔 유인화(誘引花)가 피어 있다. 하얀 잎은 벌과 나비를 꾀어내기 위한 가짜 꽃이지만, 진짜 꽃이 수정되면 스스로 뒤집히는 덕에 '지조가 있는 꽃'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부드러운 숲길을 맨발로 걷는 것도 임도를 즐기는 또 다른 방식이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서서히 걸어가면 온몸으로 대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유명산자연휴양림은 7월부터 8월까지 숲 해설가가 진행하는 '숲길 맨발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문의 (031)589-5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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