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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Mentor)의 중요성과 30년의 의미(意味)

올소맨 2010. 10. 29. 07:14

멘토(Mentor)의 중요성과 30년의 의미(意味)

 

통상적으로 우리는 한 세대를 30년 정도로 본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한세대의 년 수 또한 분명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세대를 40.50년 혹은 그 이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세대를 지칭하는 연수가 30년으로 고착된 것은 왜일까?

우리네 삶을 뒤돌아 보건데 한세대는 통상 개인이 뜻을 세우고 정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거나 이루고자 한 것을 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한이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달인(達人, 장인)과 전통문화쪽에서 이야기하는 명인 또는 명장,곧 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자가 되려면, 최소 30년 정도의 기술 숙성기를 거처야만 한다. 제 아무리 명석한 이라고 할지라도 특정분야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르려면, 초기 기술 모방의 단계로부터 보다 익숙하고 완전한 기술의 단계로 이행하는 데에 최소 30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사회 속의 특정 개인이 특정 분야의 일에 뛰어 든 지 최소 30년 정도가 지나야만 비로소 완숙한 기술 경지를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유, 소년 기 천재 소리를 들었던 이들조차도 세월이 흐른 후 그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들 대부분이 소리 없이 세상 뒤편에 조용히 묻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들 역시 명석한 머리로만만은 결코 자신의 뜻 혹은 기술자로서 달인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내 삶을 반추한 결과이다. 내 삶을 뒤돌아보건 데 내가 만약 30년 후를 내다보고 지난 삶을 설계했다면, 40대 중반으로 넘어가는 이 나이에 적어도 현재와 같이 불안한 삶을 영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비록 내 머리가 아둔하다고 할지라도 지난 30년 동안 특정분야에 몰입했다면, 나 역시 지금쯤이면 해당 분야의 달인정도로 가는 과정에 충분히 될 수 있었을 테니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과거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ROTC로서 소위로 임관하고,육군 중위로 전역후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당시 내게 훌륭한 멘토가 있어서 내게 이 같은 점을 미리 말해주었다면, 나는 적어도 현재와 같은 삶에서 탈피해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쯤 나는 아마 성공적인 삶, 곧 멋지고 평온한 삶을 꾸릴 테다.

"당시 내 주위에 누구든지 언론과 특정분야에 대하여 알려주었다면.......아쉬움이 지금 그 일을 하면서 더해지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일찍이 멘토(Mentor)가 내 삶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아예 간과했다. 물론 그것의 중요성을 몰랐던 것은 물론이고, 아예 그것의 개념이나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초중고교를 비롯해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이런 멘토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멘토를 만나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분명 불행한 일이다. 앞서 말 했듯이 사실 우리들 중 대다수는 그 것 자체를 몰랐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 멘토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 스스로의 경솔로 숱한 스승이 우리들 곁을 그냥 스쳐 지나가버리게 한 셈이다. 하기야 당시 스승이라는 작자 또한 멘토의 개념을 알았을 리가 만무하다. 그저 그들 역시 자신의 삶에 매달리느라 너무 분주한 나머지, 제자들의 미래의 삶의 곧 그들의 생각과 행동까지 연계해 생각했을 리 만무하다. 하물며 내가 교육받던 당시 경제사회적 현실을 고려하면(87년~88년 학생운동 심할때), 그 당시 대부분의 스승들은 자신의 행동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스승의 이런 경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야기되고 있는 교육 실패의 문제 역시 이런 이유가 가장 주된 원인이다. 현재 우리사회가 당면한 교육문제에 대해 다들 입시교육이 지닌 한계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스승의 자질부족이 또한 자리하고 있다. 이 결과 현재의 교육 참상이 빚어진다. 한편 그 근저에는 교육제도가 자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역시 교육이 목적하는 바의 문제이다.

교육이 목적하는 것이 보편적 인간상을 구현하는 것이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가 서울대에 입학하기를 염원하는 것도 그곳을 졸업한 이들 대부분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꾸려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향은 치열한 교육경쟁을 유발시키고 있고, 또한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교육현상으로부터 벗어난 아주 예외적인 스승과 순수한 학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직업을 얻는 교육과정으로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목적으로 대하는 이들을 이른다. 그러나 그들 역시 최종 종착하는 곳은 직업이다. 그들 역시 생명을 유지하고, 급기야 결혼해서 가족을 거느리는 보편적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 속의 개인에게 직업은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관건이다. 사회 속 개인의 행, 불행 또한 이것에 의해 결정되다시피 한다. 교육과정에서 우리는 애써 이것을 말로 하는 것을 꺼려왔다. 그리고 그런 식의 말을 대놓고 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부도덕 하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칫 그로 인해 야기되는 과당경쟁이 부를 수 있는 파괴력 때문이다. 특히 좁고 척박한 땅과 빈약한 자원은 우리사회 속 개인들을 역사의 어느 시기나 항상 과당경쟁에 노출시켰다.


 

사실 70년 초반까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사회는 봉건 사회와 같은 사회구조 속에 있었다. 즉 농업, 그것도 자급자족을 위한 영농이 전부인 사회였다. 일부 상업이 존재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의 힘은 아주 미약했다. 따라서 당시 직업이라는 것도 경계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자연히 당시의 교육 역시 가급적 사회적 경쟁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지금은 그 당시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회분화와 함께 직업의 형태 또한 분화되어 정말 다양해졌다. 어느 덧 한국이 산업사회를 지나 디지털 정보통신사회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멘토의 중요성은 더욱더 부각되고 있다. 현재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 맨토는 정말 더더욱 중요해졌다. 다시 말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30년을 내다보는 좋은 직업교육이야말로 그들 모두에게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할뿐더러, 미래에 닥칠 새로운 사회를 아름답고 평화롭게 유지시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우리국가는 한 때 ‘일인 일 기술’ 시대, 곧 기술입국을 표방한 적이 있다. 사회 혹은 국가 발전을 위한 기술교육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이는 종래 사회 속 개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교육은 보편적 사회인을 기르기 위한 목적과 함께 사회 속 개인을 특정 직업에 안착하도록 지식과 정보를 전수하는 과정이다. 현재는 사회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평생교육이 보다 강조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통상 교육기간이라고 하면 월급을 받기 위해 특정 직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 긴 전의 학습 전 과정을 말한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제 우리는 이 학습과정을 굳이 직업교육의 과정이 아니라고 애써 회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회피한 결과 현재와 같은 교육실패, 곧 대 교육 참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세대 곧 30년을 직업 완성의 시기로 보고 직업 전선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을 지도하면, 현재 우리가 대 참상을 빚고 있다고 믿는 교육문제 또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 이 때 우리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바로 멘토, 곧 교육고정에 참여하는 질 좋은 스승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훌륭한 멘토란 자신의 제자가 훌륭한 직업가가 되도록 잘 지도하는 이를 가르친다. 그러자면 이 멘토가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가 이후 역어 갈 새 삶, 곧 미래의 삶이다. 이 때 멘토가 꼭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한세대, 곧 30년인 셈이다. 이처럼 멘토는 30년 후 제자의 삶을 미리 내다보고, 제자가 묻는 말에 옳을 판단을 기초로 명확한 답을 해줘야 한다. 그 때 비로소 맨티(Mentee)가 평온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 할 수 있다.

사실 훌륭한 멘토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사회 속의 개인 대부분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맨티이다. 이 점이 우리사회를 불행 속으로 몰고 간다. 위대한 멘토의 부재가 한국사회 속 개인을 위기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멘토가 수동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이 점을 우리는 애써 인정해야 한다. 즉 멘토가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맨티가 보다 적극적으로 멘토에게 자신의 길을 보다 적극적으로 물어야만 비로소 옳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사회 속 대부분의 개인들은 이 점을 말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멘토가 모든 조언을 해줄 것이라고 여기는 것, 그것 또한 곧 개인 실패의 원인이다. 특히 미래인과 상담에 나선 멘토 또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길을 묻는 맨티에게 적어도 30년 후를 내다보고 조언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생각은 사회 속 개인이 자신의 직업을 결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즉 개인이 직업을 선택할 시에, 적어도 30년 후에 나타날 자신의 삶의 결과에 대한 예측, 곧 그 사이 자신이 어떤 직업인이 될 것인가에 보다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애석해 하는 점은 나는 지금껏 살면서 이 같은 멘토의 중요성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는 점이다. 어찌되었든 30년 곧 한세대를 형성하는 기간은 개인이 개인기술을 보다 완전한 경지로 이끌 수 있는 최소 연한이다. 따라서 현재를 살아가는 미래인은 반드시 30년 후 자신 삶의 방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회 속의 개인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 사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많은 사회적 역경이 늘 뒤따르지만, 그것을 잘 극복하여 끝내 자신이 하는 현재의 일을 적어도 30년 동안만 지속한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앞서 말한 달인의 경지에 반드시 오를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모두 고려할 때 한세대를 구성하는 30년은 큰 의미를 담고 있다. 거듭 말해 한세대라는 연한이 사회 속 개인의 삶의 질을 최종 결정하고, 뒤이어 사회의 질 또한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세대를 굳이 30년이라고 규정한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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