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좋은글

어떤 이별

올소맨 2008. 5. 17. 04:52



작년 가을,
앞집 감나무에 빨간 홍시가 밉지않게 익어갈 즈음 그집 할머니 께서 선물한 갓 젖을 뗀 강아지 한마리, 하얀 바탕에 까만점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앙증맞은 숫놈 스피츠. 똘망똘망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똘똘이는 그렇게 우리집 아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미 우리집 마당을 차지하고 있던 시베리아 말라무트와 진도의 잡종인 여우(여자배우의 준말, 생긴것도 여우를 닮아서 얻은 이름)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고, 그 못지않게 우리집 아이들은 똘똘이에게 완전히 빠져 버렸다. 지들 에미보다 지들 에비보다 더 극진히(?) 똘똘이를 챙겼다.

근데 이놈 또한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 지 예뻐하는 줄을 알고는 더욱 아부를 떨고, 심심하면 지 혼자 밖을 싸돌아 다니다가(그래 봐야 집밖에서 50m 이상을 못벗어 난다.) 묶여있는 여우에게 동네소식을 물어다 주고, 둘째 아이를 앞세워 놀이터를 쫄망쫄망 따라 다니다가, 나중에는 지가 앞장서고, 낯선 사람 앞에서는 맹렬하게 짖어대며 지 주인 보란듯이 의기양양해 하던 놈이었다.

그렇게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또 새로운 가을이 온 시월 세번째 화요일 저녁무렵 퇴근후 느긋한 자세를 잡을즈음 큰 딸이 하는 말
‘아빠! 똘똘이가 이상해.’
‘왜?’
‘암것두 안먹고 그냥 구석에 누워 있어.’

심상 찮음을 느끼고 큰길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장염인데요. 입원시켜야 합니다.’
‘요즘 한창 돌고 있는데 살아날 확율은 반반입니다.’
이십대 후반인듯한 영악한 수의사의 건조한 말투에 기가 죽어 사흘후 집으로 데려왔다.

현관 안쪽에다 따뜻하게 자리를 깔아준뒤 미음에서부터 돼지갈비까지 갖다 바쳐도 놈의 입맛은 영 별로였다. 억지로 입을벌려 약을 먹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예감이....
놈을 쓰다듬으며 다가오는 느낌은 불안했다. 아이들 셋은 놈 한테 눈을 떼지 못하고 거실을 왔다갔다 놈만 쳐다본다.

다음날 이른 아침 놈이 이상하다는 장여사(마누라님)의 말에 눈 비비고 일어나 그길로 체육공원 길목 동산에 묻어주곤 아이들이 깰까봐 서둘러 집으로 왔다. 출근전, ‘얘들아 똘똘이가 많이 아파서 새벽에 다시 병원에 데려다 줬다.’ 그렇게 둘러대고 이틀을 뭉게다가 아이들 에게 실토를 했다.

난리가 났다.
큰아이는 제방에서 울다가 여우 집 앞에서서 통곡을 하고, 작은 아이는 소파에 엎드려 들썩이고, 막내놈은 영문도 모른체 지 누나들 따라울고, 며칠을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다가 이제 좀 조용하다.

‘아빠가 나중에 예쁜 강아지 한마리 데려 올께.’ 말은 하지만 장여사가 허락이나 할지 원!
지도 이번일에 어지간히 충격 받은 눈치다.

강아지 한마리가 품에 안겨와 한해동안 아이들을 기쁘게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우리가족을 온통 이별의 슬픔으로 휘저어 놓을 줄이야....이젠 절대 짐승한테 정 주지 않을거다. 이런 상처 다시는 받기 싫으니까.

그러면서도 여우에게 눈길 손길 주는 나를 다시 발견한다.

공이년 십일월 초하루

添言 : 근데 동물병원 검사비, 입원치료비는 장난이 아니더라. 종합병원보다 더해! 참 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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