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좋은글

"당신의 그 단순함이 참 부럽소"

올소맨 2008. 5. 17. 04:48

늦은 오후에 살풋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슬근슬근 톱질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나는 꿈속에서 마음 착한 흥부네 식구들이 우리집 마루에서
박을 켜고 있는줄 착각을 하고  이참에 나도 금덩어리 하나 얻어야지...
잔뜩 부푼 마음으로 마루로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굵직한 남자들 목소리가 들려
깜작 놀라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여니 애들 아버지와 동료 직원이  마당 한켠에
떡 버티고 있는 자두나무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한해 걸러 주렁주렁 열리면서 아이들과 나를 참 행복하게 해주었는데
아니? 왜?
"형수님요, 나무가 지붕보다 키가 크면 그 나무는 잘라야 하는 법입니더."
두 사람은 제법 덩치가 큰 나무를 열심히 마치 속이라도 시원하듯이
싹뚝 잘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선 텃밭옆에 있는 자그마한 사과나무를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사과나무는 왜? 또?
"형수님요, 집안에 사과나무가 있으면 집식구들이 자꾸 아프다는말
들어 보셨을껀데요?"
두 사람은 자두나무를 자르듯이 사과나무를 또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더니 이번에는 회양목 한그루를 열심히 파기 시작했습니다.
"형수님요, 우리 이번에 주택으로 이사했는데 고마 한그루 선물 하이소."
나는 그저 멍청하게 마당 한켠에 앉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못한채
푹 파인 회양목이 남기고 자리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사람이고 물건이고 떠난 자리는 크다더니만
움푹 패인 그  자리가 내 눈에 무섭도록 커 보였습니다.
저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노래를 잘하면 고운 목소리로 노래라도 한곡 담아주고 싶건만
시라도 한수 쓸줄 알면 멋진 시라도 담아 주고 싶건만
고작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같이 숨쉬었던 흙에다가 시멘트 벽돌 몇장 넣고
단풍나무 밑에서 겨우내 버석거리던 나뭇잎만 슬쩍 덮어준일뿐.
10년을 넘게 가꾼 나무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달랑 트럭에 싣고 가다니......
쓰러져 있는 자두나무와 사과나무
재네들이 썩어서 힘이 없어 질때 까지 두고 두고 바라  볼것을 생각하니
비 그친 뒤의 봄맞이가 너무 허무해서
"당신의 그 단순함이 참 부럽소"라는
메세지를 017 ??????? 에게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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