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들은 저녁을 일찍 먹더니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낑낑거리며 무엇을 쓰고 있었습니다. 살펴보니 선생님께 드릴 편지였습니다. 스승의 날이 바로 오늘 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매년 학년 초가 되거나 혹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 되면 부모들은 은근한 긴장감이 생깁니다. 자녀의 교육을 맡긴 입장이다 보니 저마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조금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다른 부모들의 눈치도 살피고, 주변에 은근 슬쩍 물어보기도 합니다. 5월 14일이면 스승의 날 특선 코너가 꽃집과 백화점에 마련되어 붐비곤 합니다.
저도 그런 부모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주변 학부모들의 이런 조언을 받고 백화점 상품권을 준비해서 책 속에 카드와 함께 포장해서 선생님께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상품권은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편지와 함께 아들에게 다시 보내져 왔습니다.
“어머님, 저를 생각해서 좋은 선물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님들께 부담을 드리는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상품권을 돌려드리게 되어 공연히 어머님께서도 불편한 마음을 드리게 되는 것을 알지만 보내주신 선물에 담긴 어머님의 마음은 그대로 받겠습니다. 어머님께서 제게 보내주시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다만 제가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그 감동을 아이들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지켜봐 주십시오.”
그 편지를 받는 순간 참으로 죄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아들의 교육을 맡고 계신 선생님께 마음을 드리기 보다는 금전의 힘을 빌어 선생님의 사명감을 오히려 오염을 시켰다는 죄책감까지 생겼습니다. 선생님께 진정으로 필요한 선물은 부모들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스승의 날이 될 무렵에는 아들과 함께 카드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카드를 만들면서 선생님에 대한 아들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고, 부모이지만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아들에게 알려주어 아들도 함께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더 많이 갖게 되는 시간들 이었습니다.
올 해는 어쩐 일인지 아들은 함께 카드를 만들기 보다는 혼자서 선생님께 편지를 쓰겠다고 하며, 제게는 따로 감사의 편지를 쓰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선생님 외에도 5학년 때의 선생님께도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선생님께서도 현재 학교에 계시기 때문이지요. 아들이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해가 바뀌면서 더 견고해진 것 같아 대견합니다.
최근에는 스승의 날이 선생님들께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날이라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스승의 날이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관심과 질타로 오히려 선생님들은 위축된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교육적 사명감과는 동떨어진 몇 몇의 교사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사명감으로 오늘도 교단에서 아이들의 눈망울을 빛내고 계십니다. 교권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이 시대에 우리 인생의 주요한 정신적 지주가 되시는 선생님께 최고의 선물 ‘믿음’으로 모든 선생님을 기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항상 자랑스럽고 보람에 가득한 선생님의 가르침 속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승의 날’을 위한 최고의 선물
2008.05.15, 이향선
'마인드up 스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촛불문화제와 정부, 이명박 정부에는 국정운영을 책임질 각료가 단 한명도 없다. (0) | 2008.05.18 |
---|---|
나를 돌아보는 시간 (0) | 2008.05.16 |
앞으로 세 걸음, 뒤로 세 걸음 (0) | 2008.05.13 |
고백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0) | 2008.05.12 |
속물의 두얼굴 (0) | 2008.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