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남자

곽태휘, 국가대표 '황태자' 계보 잇는다

올소맨 2008. 2. 20. 03:25

 

▲ 곽태휘 [뉴시스]

허정무 감독이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았을 때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누가 허 감독의 황태자가 될 것인가’였다. 사령탑이 바뀌면 새 감독의 축구 철학을 제대로 소화하는, 이른바 코드가 맞는 뜻밖의 재목들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히딩크 사단의 박지성 송종국, 움베르토 코엘류 감독 시절의 조재진, 아드보카트호의 이호 등이 그들이었다.

▲허정무호 황태자? 답은 나왔다
17일 중국과의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 1차전을 마치자 ‘누가’에 대한 답이 나왔다. 수비수 곽태휘(27, 전남)였다.

중국의 공격을 차단할 스리백으로 나선 곽태휘는 2-2 무승부 분위기가 짙던 후반 인저리 타임에 오른발 논스톱 슛으로 중국 골네트를 갈라 승부에 쐐기를 박아 버렸다. 중국으로선 30년간 시달려온 ‘공한증(恐韓症 )’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곽태휘가 주목받기 시작한 경기는 지난 6일 투르크메니스탄과 가진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1차전. 자신의 A매치 두 번째 경기였던 투르크메니스탄전서 곽태휘는 전반 43분 헤딩 선제골을 터뜨려  ‘허정무호’ 1호 골을 기록했다. 

 이 한방은 지난 2007년 아시안컵 본선 조별리그 인도네시아전에서 김정우가 전반 34분 골을 넣은 뒤 이어지던 대표팀의 치욕적인 무득점 기록을 549분 만에 끊은 것으로 각별한 관심을 모았다. 이어 중국전에서 2경기 연속 골을 작렬하자 자연스럽게 ‘골 넣는 수비수’ ‘황태자’라는 수식이 따라왔다.

인생 유전의 주인공
‘허정무 감독의 황태자’라는 표현은 곽태휘에게 특히 잘 맞는다. 허 감독을 만나면서 그의 축구 인생이 활짝 꽃 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FC 서울에 입단,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상비군을 지내긴 했으나 썩 돋보이는 존재는 아니었다. 세뇰 귀네슈 감독이 FC 서울 지휘봉을 잡은 지난 해에는 시즌 중 전남의 김진규와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맞트레이드 형식이기는 했으나 FC 서울이 전남에 현금을 보태줬다. 당시만 해도 올림픽 대표는 물론 국가대표팀의 주전 중앙수비수 노릇을 하는 김진규의 가치가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허정무 전남 감독의 조련을 받으면서 곽태휘는 달라졌다. 허 감독의 믿음 속에 팀의 주전 수비수로 자리 잡았고 지난해 포항과의 FA컵 결승 1차전에서 천금같은 결승골을 뽑아 FA컵 2연패의 초석을 다졌다. 그를 알아준 허 감독에게 제대로 보답한 것이었다.

그리고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허 감독은 그를 대표팀으로 불러 화답했고 또 곽태휘는 투르크메니스탄, 중국전에서 잇따라 결정적인 골을 터뜨려 허 감독을 기쁘게 했다. 반면 대표팀 붙박이로 여겨졌던 김진규는 허정무호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곽태휘와 처지가 뒤바뀐 것이다.

▲하지만 아직 더 가야한다
허 감독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지만 곽태휘는 아직은 ‘깜짝 스타’에 가깝다. 대표팀에선 갑자기 떠오르다 소리없이 가라앉는 경우도 많았다. 아드보카트 감독 시절 ‘황태자’로 불렸던 조원희(수원 삼성)와 이호(러시아 제니트)가 대표적이다.
 
조원희는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 후 첫 경기였던 이란전에서 골을 터뜨려 각광받았으나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는 단 한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핌 베어벡 감독은 그를 대표팀에 부르지도 않았다. ‘제 2의 김남일’로 불렸던 이호는 독일 월드컵 본선 세 경기에 모두 스타팅 멤버로 출전하는 등 아드보카트 감독의 총애를 받았으나 허정무호에는 승선하지 못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을 따라 진출한 러시아 제니트에서 주전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라운드에 거의 나서지 못한 탓이다.

곽태휘 역시 마음을 놓긴 이르다. 이번에는 빠졌지만 여전히 강력한 라이벌인 김진규를 비롯, 강민수 등 그와 주전 자리를 다툴 자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1m85, 80kg의 듬직한 체격에 준수한 외모까지 겸비, 스타성을 갖추고 있는 곽태휘가 ‘허정무호의 황태자’로 계속 군림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