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이야기

혼불예찬 "달구어진 햇볕에서 훅 놋쇠 냄새가 난다"

올소맨 2008. 1. 19. 21:01
[학부모님의 이야기] 혼불 예찬 -- " 달구어진 햇볕에서 훅 놋쇠 냄새가 난다 "
 
글쓴이: 진서 아부지 조회수 : 80  07.06.18 00:28

 

 

 

민족의 얼, 최명희의 [ 혼불 ] 을 예찬하며...

 

작년말 친구로부터 추천을 받고 빌려서 틈틈이 읽기 시작한 최명희의 [혼불] 10권을 이제서야 겨우 일독을 마치고, 가슴에 남는 느낌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아쉬움과 가슴 저며 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1981년에 집필을 시작, 1996년 12월에 이르기까지 근 17년간  단 한 질의 장편 대하 소설에 자신의 온 혼과 넋을 다바쳐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엮어 놓은 채ㅡ  1947년 전주생인 작가 최명희는 1998년 51세의 아까운 나이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나버렸지요.....

 

구한말. 일제 강점기 남원 이씨 매안을 배경으로 삼아, 종가집의 3대에 걸친 종부들의 시집살이를 얼개로 하여 씨줄 날줄 베필을 짜내듯이, 혹은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듯이, 한편으로는 실타래를 풀어 헤치는 듯 싶지만, 그 사이에 어느새 가다보면 감당하기 힘들만큼 커다란 모습으로 유장하게, 역사와 문학과 사상을 하나로 녹여서 만들어진 커다란 예술 대작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미시적 접근과 묘사를 통해서 독자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거시적 틀거리를 완성해내는 작가 특유의 문체와 그의 유려한 문장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은, 우리나라 문학계에 참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ㅡ " 며칠 사이에 벌써 여름 기운이 끼친다.

달구어진 햇볕에서 훅 놋쇠 냄새가 난다. 더위가 익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누우런 오조 이삭이 어느덧 묵근하게 살이차고, 청대콩도 익어 간다...

비워 놓고 나온 집에서는 어린것이 집을 보면서 멍석에 보리를 널어 말리고 있을 것이다.

마침 뙤악볕이라 참으로 잘 마르겠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자칫 헛눈을 팔고 해찰하기 일쑤라.... " ㅡ

 

ㅡ " ... 눈발 없는 동짓달에 마른 바람이 무겁게 캄캄한 밤 한복판을 베폭 찢는 소리로

날카롭게 가르며 문풍지를 후려친다.

그 서슬에 놀란 등잔불이 허리를 질려 깝북 숨을 죽인채 까무러 들더니 이윽고 길게 솟구쳐

오르며 너훌 거린다.

방 안으로 끼쳐든 삭풍 기운에 소름을 털어내듯 불 혓바닥이 검은 그을음을 자욱하게 토한다... " ㅡ

 

그나마 읽던 중간 중간에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한두 구절만 옮겨본 것이지만, [혼불] 속에는 이와 같이 작가 최명희 만이 구사할 수 있을 법한 표현들이 부지기수로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뜻을 알듯 모를듯 싶은 우리네 살가운 토속어와 고유어의 풍부하고도 자유 자재한 사용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네 세시 풍속들이 마치, 색바랜 흑백 필름 속에 비내리는 잡티가 끼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풍습이며 고향 풍경에 대한 세밀한 표현의 생생함이 마치 형형색색 올 칼라로 연출되는 선명한 장면들을 마치 눈 앞에서 찬찬히 한 장 한 장 기록 사진으로 떠 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얼마 안남아 훌쩍 여름 휴가도 다녀 올 터인데, 혹 시간 여유 얻으시거들랑,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께는 필히 [혼불] 한번 읽어 보십사 거듭 강추 합니다...

 

 

노파심인데 제 글이 지루하고 불편하면 안티 글을 올려 주시든지, 수신 거부를 해 주세요.^^ --;;

 

남고에 여고생이 오면 홍일점으로 괜찮지만, 여고에 남고생이 가면 계면쩍은 부분이 다소 있거든요...

문명의 이기와 시대의 변천사에 아날로그 닉네임...

 

이진서 아부지 올림. 

 

 

 

 
후후~~ 언제나 환영이예요 ^^ 언제 책을 잡아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아가들에게는 책읽으라고 하면서 교사는 체면이 서질 않네요 ^^ 저도 더운여름 수박을 옆에끼고 책한권 잡아보아야 겠습니다. 책읽는 지혜반!!!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지네요 ^^ 07.06.18 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