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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폐업 전문기자'가 됐나

올소맨 2011. 7. 11. 22:16

한현우 기자

35년간 영업해온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앞두고 있는 서울 이태원의 재즈 클럽 '올 댓 재즈'의 진낙원 사장을 만나러 갔더니 그가 물었다. "이사·폐업 전문기자라면서요?" 순간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으나 곧바로 알아듣고 둘이 크게 웃었다. 유독 라이브 클럽이 폐업하거나 이사한다는 기사를 여러 번 썼기 때문이다.

2003년 이태원의 블루스 클럽 '저스트 블루스'가 경영난으로 폐업한다는 기사를 썼던 게 '첫 폐업기사'였던 것 같다. 블루스 음악만을 고집하던 기타리스트이자 클럽 사장인 채수영씨는 "한국에서는 도저히 블루스로 먹고살 수 없다"며 외국행을 결심했었다. 이 클럽의 마지막 공연 날,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클럽에서 채씨는 마지막 곡으로 비틀스의 '내 기타가 나직이 흐느낄 때(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연주했다. '저스트 블루스'는 그 뒤 우여곡절 끝에 서울 압구정동에 다시 클럽을 열었으나, 운영이 어렵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작년 말엔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씨가 운영하는 재즈 클럽 '문 글로우'가 문을 닫게 됐다는 기사를 썼다. 다행히도 이 클럽의 단골손님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고 신씨를 격려한 끝에 '문 글로우'는 새해 들어서도 라이브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

새로운 것에 환호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지 않은 건 아니다.
미국뉴욕의 대표적인 라이브 클럽 'CBGB'가 폐업할 때도 외신을 보고 그 기사를 썼던 것 같다. 국내에 마지막 하나 남은 LP공장 '서라벌 레코드'가 폐업한다는 소식도 활자로 전했었다. 일감이 없어 바둑을 두고 있던 이 공장 홍창규 사장은 "음악박물관 같은 데서 문 닫게 되면 (기계를 전시하게) 연락 달라고 하더라. 남의 속도 모르고"라고 말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왜 나는 '이사·폐업 전문기자' 소리를 듣게 됐는가. 전문지가 아닌 종합일간지에서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또 관심 가질 만한 사안 위주로 기사를 쓰게 된다. 평론가들이 아무리 혹독하게 비평해도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가 반드시 신문에 소개되는 이유가 그것이며, 예술적 성취도가 빼어나다 해도 TV에서 볼 수 없는 뮤지션의 음악은 지면을 차지하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재즈와 블루스, 그리고 '소수의 취미'로 박제가 돼버린 LP는 주요 기사 리스트에서 빠진 지 오래다. 그러나 폐업은 다르다. 손님 수가 줄어든 나머지 클럽이 문을 닫게 되는 것은 하나의 문화적 경향이다. 그렇다 보니 재즈와 블루스 기사는 썼다 하면 폐업이요 이사가 돼버린 것이다.

스포츠 경기를 TV로만 보다가 경기장에 가서 직접 관람하면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도록(圖錄)에서 숱하게 봐왔던 그림을 전시회에 일부러 가서 보는 이유도 그 생생함 때문이다. 당연히 음악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우리나라엔 크고 작은 공연도 꽤 열리는 편인 데다가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매일 저녁 무대에 서는 클럽이 적지 않다. 그런데 클럽들은 늘 어렵고 쪼들리며 걸핏하면 폐업 위기로 내몰린다.

사실 어느 나라의 라이브 클럽도 떼돈을 벌지는 못한다. 클럽은 공연이 열리는 저녁에만 손님이 몰리기 때문에 하루 12시간 문을 열어도 사실상 서너 시간 장사다. 세계 재즈 시장의 50%를 차지한다는 일본에서도 재즈 클럽들은 기업의 접대가 재즈 클럽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수지를 맞춘다고 한다. 클럽 사장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음악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클럽을 경영하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이들은 한결같이 운영비 정도만 나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클럽을 운영하고 싶어한다.

클럽은 뮤지션이 작은 무대에서 적은 수의 관객과 만나는 공간이다. 무대와 맨 앞 좌석은 공간이 없다시피 바짝 붙어 있다. 이렇게 친밀한 공간에서 감상하는 라이브 연주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클럽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 농밀한 질감을 결코 알 수 없다. 도시 곳곳에 클럽이 있어 저녁마다 공연이 열린다는 것은, 그 도시에 한 템포 쉬고 갈 만한 여유와 너그러움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도시라면 어느 곳이나 골목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클럽이 있다.

'한국 재즈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재즈 가수 박성연씨가 30년 넘게 운영해온 서울 서초동 클럽 '야누스'가 무척 어렵다는 소식이 들린다. 가장 활발한 라이브 클럽 중 하나인 대학로의 '천년동안도' 역시 최근 손님이 부쩍 줄었다고 한다. '폐업·이사 전문기자'에겐 조마조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