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새입니까?’ 물으면 모두 아주 쉽게 대답한다. ‘예.’ 그러나 ‘오리가 새입니까?’ 물으면 약간 대답이 더뎌진다. ‘타조가 새입니까?’ 물으면 시간이 좀더 오래 걸린다. 새의 기본적인 특징은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나는 것이다. 오리나 타조를 새라고 대답하는 데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하늘을 날지 못하기 때문이다. 퇴화된 날개에 대한 논리적 추론이 동원되어야만 ‘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전형성’(typicality) 효과라고 한다.
전형성 효과는 효율적 소통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사회적 편견이 되기도 하고 무의식적 억압이 되기도 한다. ‘성공’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전형성이 그러하다. 한국인의 삶을 왜곡하는 ‘성공’에 대한 전형적인 서술방식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마치 서울대 수석합격자가 ‘잠은 충분히 잤으며, 과외는 받은 적이 없고, 학교 공부를 충실히 했다’고 대답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의 성공 내러티브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일단 성공한 이들은 젊은 시절 엄청나게 고생한다. 고생하지 않으면 성공이 아니다. 그들의 부모는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하다. 젊은 시절, 의욕만 가지고 무모하게 달려들다가 처절하게 무너지고, 실패가 반복된다. 믿었던 사람에게 철저하게 배신을 당한다. 몇 번의 부도도 필수다. 좌절한 주인공은 한강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다시 굳게 마음을 다져먹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남보다 늦게 자고 먼저 일어난다. 참고 인내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일이 잘 풀려 나간다. 한번 풀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걷잡을 수 없다. 성공한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항상 힘줘 이야기한다. 포기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노력했다. 그동안 참고 고생한 아내와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고통을 딛고 일어선 그들의 성공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왜 아직도 한국 사회가 이 구태의연한 ‘성공 내러티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어째서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새벽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어야 하고, 재미라고는 전혀 없는 성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왜 성공한 사람의 아내와 아이들은 매번 참고 희생해야만 하는가? 재미있고 즐거워서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왜 전혀 없을까? 왜 꼭 실패와 역경을 딛고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여유’ ‘재미’ ‘나눔’과 같은 풍요로운 이야기는 왜 한국식 성공 내러티브에는 전혀 포함되지 않는 걸까?
왜 한국형 ‘성공 내러티브’에서는 우연히 얻어진 성공은 하나도 없을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하거나 나태한 사람들인가? 아니다. 대부분의 성공은 ‘아주 적당한 시기’에 ‘아주 적당한 기회’가 ‘아주 우연히’ 주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 황당한 것은 어린 아이돌 스타들도 이 구태의연한 산업사회식 성공 내러티브를 마구 늘어놓는다는 사실이다.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난, 십대 후반의 아이돌들이 주말마다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연습생 시절의 ‘불어터진 라면’을 이야기한다. 이야기 말미에는 꼭 고통스런 시절을 기억하며 눈물이 복받쳐 어쩔 줄 몰라 한다. 아, 이건 정말 아니다. 그들의 짧은 인생에서 ‘눈물 젖은 라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오버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재미있어서 했다!’ ‘정말 즐거워서 하다 보니 이렇게 잘됐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 미국 사회에는 1960년 이후 이혼이 2배로 늘었고, 청소년 자살이 3배로 늘었다. 폭력범죄가 4배로 늘었고, 감옥에 있는 사람이 5배 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우울증 환자는 10배로 늘었다. 성공해도 여전히 참고 인내해야 하는, 지난 시대의 잘못된 성공 내러티브 때문이다.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젠 ‘근면’ ‘성실’ ‘고통’ ‘인내’ 같은 지난 시대의 내러티브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차원의 ‘성공 내러티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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