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에겐 인문학이 있었다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의 삶 속에 공통적으로 녹아들어가 있는 게 하나 있다. 인문학이다. 그건 다름 아닌 대학이나 논어와 중용 같은 유교적인 가치관이었다.
정주영은 훈장인 할아버지에게 3년 동안 한학을 배웠다. 서당 3년에 <천자문>에서 시작해서 <동몽선습><소학><대학><맹자><논어>를 배우고, 무제시, 연주시, 당시도 배웠다. 이렇게 공부 한 뒤 보통학교에 들어간 정주영은 학교 공부는 배울 것이 별로 없어서 학교에 있는 시간이 나한테는 실컷 노는 천국이었다고 회고한다.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 3년 동안 할아버지의 서당에서 열심히 암기하고 뜻을 익혀 할아버지이자 훈장이었던 어른 앞에서 달달달 외워 보여드렸던 것은 공부가 재미있어서도 뜻을 이해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회초리로 사정없이 종아리를 맞아야 하는 매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문 공부는 종아리를 맞아 가면서 괴롭게 배웠지만, 그 한문은 정주영의 일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식 밑천의 큰 부분이 되었다.
정주영의 공부는 초등학교에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배운 <대학>이나 <자치통감> 칠언시 오언시는 요즘 대학생들도 한문으로 읽고 해석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이었다.
가방끈이 길지 않았지만, 정주영은 어릴 때 배운 인문학에서 세상이치를 터득하는데 필요한 대부분을 배운 셈이다.
그때 배운 한문 글귀들의 진정한 의미는 자라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정주영이 서울로 세 번째 가출했을 때도 그는 책에 빠져 들었다. 학원에서 열심히 부기를 배우고, 학원 공부가 끝나면 숙소에 처박혀 죽어라 책만 읽었다. 나폴레옹전, 링컨, 삼국지 등을 읽은 것도 그때였는데, 돈이 없어 책을 많이 사들이지 못하는 대신 읽은 책을 읽고 또 읽곤 했다.
정주영은 그와 비슷하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백절불국의 강인한 정신력과 용감무쌍한 투쟁력만으로 마침내 프랑스 공화국 황제가 된 나폴레옹전은 그에게 무한한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주어 수없이 반복해 읽었다.
링컨 역시 그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산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온 것도 비슷했고 노동을 한 것도 비슷하고, 나처럼 항상 책에 굶주려 있었던 것도 비슷했다.
서울에 와서 그토록 굶주렸던 책을 한두 권씩 사볼 수 있는 것도 그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소설도 읽었지만 내 돈을 주고 산 책은 주로 위인전이었다. 위인들의 전기를 읽다가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은 공책에 일일이 베껴놓았다가 틈틈이 반복해 읽기를 거듭했다.
첫 새벽에 일어나 밤늦도록 위인전에 도취되어 읽기를 거듭했다. 부기 공부 외에 그것도 나름대로의 공부였던 셈이다.
이병철도 어린 시절 5년 동안 자연스럽게 서당 문산정에서 <천자문>과 <통감> <논어> 등을 배웠다. 이병철은 최고의 경영 바이블로 삼았던 책이 <논어>이었다.
“가장 감명 받은 책 혹은 좌우에 두는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 <논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바로 <논어>다. 나의 생각이나 생활이 <논어>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만족한다. <논어>에는 내적 규범이 담겨 있다. 간결한 말 속에 사상과 체험이 응축되어 있어, 인간이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마음가짐을 알려 준다.”
이병철이 논어 구절을 자주 인용하면서 자신의 경영철학을 피력했다. 다섯 살부터 열 살 때까지 서당 시절에 그는 논어의 요체를 외우고 익혔던 것이다.
‘사람을 의심하면 쓰지 말고, 일단 쓰면 의심하지 말라’는 논어의 한 구절은 이병철이 기업가로서 자우 인용하던 문구였다. 실제로 이병철은 기업경영을 할 때 일단 채용한 사람은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하지 않은 것에서 더 나아가 그에게 모든 일을 믿고 맡겼다.
이병철의 논어경영은 일본재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시부자와 에이치(澁澤榮一, 1840~1931)의 경영철학과 닮은 점이 있다. 시부자와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논어사상을 기초로 500여개의 기업을 세운 일본 자본주의의 창시자다. 시부자와는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도덕과 경제가 하나’라는 그의 주장은 얼핏 모순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올바르게 번 돈을 올바르게 쓰는 것이 진정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라고 주창했다.
2년6개월 만에 복원된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옛 전략기획실)에 내정된 직원들도 <논어> 읽기가 한창이라고 한다. ‘학(學)’으로 시작해 ‘지인(知人)’이란 단어로 끝나는 <논어>가 인재 중시와 미래 신기술 연구라는 그룹의 핵심가치를 잘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이른바 ‘뉴 삼성’의 모토를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에서 찾고 있다는 얘기다.
구인회 역시 홍문관 교리를 지냈던 할아버지에게 여섯 살 때부터 한학을 배웠다. 구인회는 13살이 되면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과 <시경> <서경> <역경> 등 사사삼경을 거의 다 떼었다고 한다.
구인회는 18살에 서울에 상경해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입학하자마자 교내 독서회에 가입해 많은 책을 탐닉하며 정신적인 교양을 쌓아나갔다. 마치 지식에 굶주린 사람과도 같이 마음을 살찌게 하기에 힘쓴 것이다. 책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밀물처럼 받아들였다.
구인회 역시 ‘인화’라는 유교적 가치관을 평생의 덕목으로 삼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웬 구닥다리 같은 유교적 규범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인화는 구씨와 허씨가 동업한 회사가 큰 말썽 없이 단합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의 공통점은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익힌 한학, 즉 유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철저한 자기관리(수신)를 통해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데 있다. 자기관리를 하지 않고서는 탐욕과 공포를 오가는 치열한 사업경쟁에서 제대로 원칙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원칙을 지키게 하는 좋은 방법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에는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당연하면서도 쉬운 말이 나오지만, 평생을 이를 지키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세상과 자기와의 싸움에서 탐욕과 유혹에 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틈틈이 인문학을 다시 보며 그 뜻을 다시 내면화하는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그동안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고리타분한 학문으로만 생각했던 한학, 즉 인문학이 왜 지금까지 열풍을 불고 있는 것일까.
과거는 무조건 버려야 하는 지나가버린 쓸모없는 시간의 흔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오는 ‘온고지신’처럼, 역사를 통해 과거의 소중한 지혜를 배우고 익혀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새로운 지혜의 근간으로 삼아야 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출처:정혁준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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