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오면, “그대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가.”
칠흑 같이 어두운 밤. 포탄의 섬광이
머리 위에서 번뜩이고,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줄기가 동료들의 팔과 다리를
관통하고 있는 처절한 전장. 그 해 6월의 밤.
“위생병, 위생병. 정 이병, 정 이병.
김 일병, 김 일병. 박 하사, 박 하사
소대장님, 소대장님. 통신이 두절입니다.
여기는 독수리, 여기는 독수리. 부엉이 나와라, 오버.
여기는 독수리, 여기는 독수리. 내 말이 안 들리나.
사방이 적이다. 적에 포위되었다. 긴급지원이 필요하다.
부엉이 나와라, 오버. “
신음하는 통신병, 늘어 진 수화기.
우리는 그 날 밤, 수많은 전우들을 잃었다.
피로 물든 산하를 보았다.
“전 소대원들은 들어라. 전 소대원들은 들어라.
우리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죽음으로 진지를 사수하라. 죽음으로 진지를 사수하라.
조국이 우리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조국이 우리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죽음의 선봉에 서겠다.
소대장인 나를 따르라. “
우리는 그 날 밤, 소대장의 장렬한 전사를 목격했다.
그리고 우리는 전우들과 소대장의 주검을
그 곳에 묻지도 못한 체, 흩어지고 말았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선의 다급한 목소리.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전우의 거친 숨소리.
그 소리만으로 우리는 행복했다.
다음 날, 우리는 그 거친 숨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음 날, 우리는 그 다급한 전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소리 내어 통곡 할 수도 없었던 그 날 , 아! 6월의 밤.
6월이 오면, 산자의 기쁨보다는 죽은 자의 말없는
항변이 우리들 귓전에 울린다.
“그대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 아침에 이 작품을 쓰고, 다시금 되 뇌이며,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다. 전장의 다급함이 내 가슴에 뜨겁게 다가온다. 독자 여러분들도 감정을 이입하여 전쟁이라는 상황을 가정한 다음 이 시를 한번 낭송해보라. 가슴 속에서 솟는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것이다. 피의 6부 능선에 칠흑 같은 어둠의 밤이 다가왔다. 포탄의 섬광이 금방이라도 내 가슴에 안길 것 같다. 총알의 붉은 선이 전우들의 팔다리를 관통하고 있다. 통신병의 다급한 목소리, 위생병을 외치는 전우들의 다급한 목소리, 그렇게 전장의 밤이 깊어 가고 있다. 소대장마저 나를 따르라며, 기꺼이 조국을 위해 산화한 이 처절한 전장, 다음 날 아침, 어느 누구도 그 다급한 목소리들을 들을 수 없었다. 살아 있다는 증거, 그 절규들, 그 순간이 차라리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그 해 6월, 그 6월의 밤은 역사 속에 묻혀 버렸고, 산자를 향해, 전장에서 산화한 전우들의 "그대들, 아직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현재의 우리가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동작동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리의 영웅들을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아니냐. 결코 잊어서도, 잊혀져서도 안 될 그 날 밤, 아! 6월의 밤.
시인, 정 상
1964년,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계곡,
비무장지대(평화의댐 북방 14km 휴전선 부근)를 순찰하던
한 청년 장교가(한명희,당시 25세. 소위, 전 서울시립대 교수)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 이끼 낀 무명 용사의 돌무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비목'의 작사자 한명희 교수
6.25때 숨진 어느 무명 용사의 무덤인 듯 옆에는 녹슨 철모가 딩굴고 있었고,
무덤 머리의 십자가 비목(碑木) 은 썩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보였습니다.
비목그는 돌무덤의 주인이 자신과 같은 젊은이였을 거라는 깊은애상에 잠깁니다.
4년 뒤 당시 동양방송(TBC) 에서 일하던 한명희 PD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장일남 작곡가는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 2006년9월 별세) 가곡에
쓸 가사 하나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돌무덤과 비목의 잔상이 가슴 속에 맺혀 있던 한명희 PD는
즉시 펜을 들고 가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는 "비목"의 가사는
이렇게 탄생되었답니다.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과 더불어 한국인의 3대 애창곡으로
널리 불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가곡 "비목" 의 고향인 강원도 화천군에는
전쟁과 분단의 흔적들이 아직도 이곳저곳에 서려 있습니다.
6.25 당시 화천댐을 놓고 벌인 치열한 공방전으로
붉게 물들었던 파로호는 지금 신록 속에 푸르기 그지 없고,
군사 정권 시절 댐 건설의 필요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평화의 댐은 민통선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댐 옆에는 가곡 "비목" 의 탄생을 기념하는 '비목공원'이 들어섰습니다.
평화의 댐
파로호는 호수 모양이 전설의 새 대붕(大鵬) 을 닮았다고 해서
원 이름은 대붕호(大鵬湖)였답니다.
그러던 것이 1951년 화천댐 공방전에서 국군이 중국군 3개사단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자 훗날 이곳을 방문했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적을 격파하고 포로를 많이 잡았다" 는 뜻으로"파로호(破虜湖)" 라는
새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파로호는 1944년, 화천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로 산 속의 바다라고도
불립니다. 호수에는 쏘가리, 잉어 등 70여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파로호
파로호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는
평화의 댐으로 가는 460번 지방도 오른쪽에 있습니다.
파로호 휴게소에 차를 대고 5분 정도 걸어올라가야 합니다.
비목공원은 1998년, 가곡 '비목' 을 기념해서 만들었습니다.
산비탈에 돌로 한반도 모양의 단을 쌓았고
곳곳에 돌무덤과 비목을 세웠습니다.
비목공원
주차장 입구에 "비목" 노래비가 서 있어 방문자들은 누구나 한번씩
그 앞에 서서 가사를 되새겨 본다고 합니다.
현재 비목공원에는 기념탑 외에 철조망을 두른 언덕 안에
녹슨 철모를 얹은 나무 십자가들 이 십여 개 서 있어
한국전쟁이라는
민족 비극의 아픔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화천군에서는 매년 6월 3일부터 6일까지 이곳 비목공원과 화천읍내
강변에 들어서있는 붕어섬 등에서 "비목 문화제"를 개최합니다.
진중가요, 시낭송 등으로 짜여진 추모제, 비목깎기 대회, 주먹밥 먹기대회,
병영체험, 군악퍼레이드 등이 나흘간 펼쳐진다고 합니다.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자락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렸고
그 사이로 북한강이 흐르고 있습니다.이곳에서는 근래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됐다고 해서 주목을 끌었습니다.조국을 위해 희생한 비목의 주인공과
많은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생각하며 "비목"의 가사를 다시 되새겨 봅니다.
가곡 '비목'은 적막에의 두려움과 전쟁의 비참함, 그리고
그 때문에 더욱 간절한 향수 등이 서정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노래입니다
* 원하시는 곡을 듣고 싶으면 세모 재생 버튼을 클릭하면됩니다.
* 메조 소프라노 백남옥 * 바리톤 황병덕 * 테너 엄정행
* Sofia Solists Chamber Ochestra, 지휘 최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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