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좋은글

오늘 내가 느낀 소중한 것들

올소맨 2008. 4. 15. 10:30

겨울이 몹시도 우리곁을 떠나기 싫은 듯 못내 제자리 걸음을 하더니만
오늘은 시골의 봄볕이 너무도 화사해서 다시 한번 옷 매무새를 여미는 그런 날입니다
인고의 계절을 보낸 뒤 꽃잎을 뒤로하고 가지가지 마다 꽃송이 송이를
맺은 목련의 우아함은...
탐스럽게 피기도 전에 한껏 우리의 마음을 부풀게 한다고~
그래서 어느 시인이 '목련'을 사랑이라 했나 봅니다
사철나무 담장은 온통 연초록색으로 빛을 더하고
마당 군데군데 새싹들은 키재기를 하는양 쏙쏙 돋아나 겨우내 게을렀던
주인의 마음을 몹시 바쁘게 합니다
미룰수록 마당은  눈깜짝 할 사이에 새싹들의 천지가 되고 마니까요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잠시 접고 봄들길을 따라 나섭니다
단감나무 과수원의 작은 철망 대문이 삐죽이 열려 있고
탁 탁 가지치는 소리가  단감나무도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기 위한 채비를 하나 봅니다
이장님댁 과수원의 매화나무 세 그루는 하얀 떡가루를 잔뜩 묻힌채
내게도 떡가루를 흩날리며 정겨운 인사를 나눕니다
저 매화나무 가지를 꺽어 부엌 창가에 두면...
무심한 마음에 삿된 생각이 듭니다
여기 저기서 마을을 휘젖고 다니는 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툴툴거리는 경운기 소리도 오늘따라 귀를 몹시 즐겁게 합니다

보랏빛 오랑캐꽃이 한 폭의 동양화인 듯 무진장 깔려 있는 들길에서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털썩 주저 앉습니다
내 눈속에 가득한 오랑캐꽃에 정신없이 빨려 들어가
그 가장자리에 내 자리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새풋한 봄바람이 산들 불어와 양 볼을 간지럽힙니다
하늘의 뭉게구름이 저 만큼에서 내려다보며 누구랑이랄것도 없이
오순도순 부대끼기를 바라는 지금 이 순간만은
살면서 감당해야 할 그 어떤것도 꿋꿋이 헤아릴 수 있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오랑캐꽃들의 속삭임을 마음속 깊이 꼭꼭 새길즈음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얼른 정신이 들었습니다

다시 들길을 따라 따라 갑니다
군데 군데 쑥이랑 냉이랑~ 이제는 나물캐는 색씨(?)가 됩니다
부지런한 할머니는 이미 한 바구니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으로 오십니다
땅에서 움틀때 몹시 힘들었을텐데 그들의 반란은 무시하고
잔인하게도 나는 요놈도 캐고 조놈도 캐서 양쪽 호주머니까지 볼록해졌습니다
온 몸에 온 마음에 쑥내음새가 가득합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벌써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향기까지 더해서 끓인  쑥국을 먹는 식구들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이런 마음도 행복이라면 마냥 나누고만 싶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쑥국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그 세상에도 봄은 왔는지 그만 목이 메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꼭 아버지께 쑥국을 끓여 드리리라!
생각하면 주르르 눈물나는 이내 마음은
봄향기의 가벼운 채찍질에  부끄러운 심정으로
뒷동산 너머에 있는 우리 집으로 달려 달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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