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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나' 연산군 폐위 그이후...실록을 보면

올소맨 2008. 4. 5. 14:50

 

지난 1일  SBS 대하사극 '왕과나' 종영이후 연산군과 그의 이복동생 진성대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산군은 9대 성종과 폐비 윤씨 사이에 태어난 장남으로 성종의 뒤를 이어 19세의 나이로 조선 10대 임금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발단으로 ‘무오사화’(1498년 연산군 4년)를 일으키며 수많은 조정신료를 죽였다.

이후 자신의 모후인 폐비윤씨가 인수대비 한씨, 한명회 등과 결탁한 후궁들에 의해 폐비된 후 3년 뒤 사사 받았던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사화’(1504년 연산군 10년)를 일으키며 폭군으로 전락한다.

억울하게 사사 당한 어머니(폐비윤씨)의 원수를 갚고자 아버지의 후궁인 정숙용, 엄숙용을 죽인 후, 자신의 할머니인 인수대비를 머리로 들이받기도 했으며, 정현왕후의 처소에서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고 실록은 전하고 있다. 

또한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으로 수많은 조정신료들을 학살하고, 부관참시(죽은 사람의 관을 열어 시체의 목을 베는 극형) 하는등 잔인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왕과나'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충신 김처선이 이런 폭정에대해 충언을 하자 연산군은 자신의 부모와도 같았던 김처선의 혀를 자르고 뱃속의 창자까지 파헤치는 등 끔찍한 일을 자행했다.

이같은 폭정에 반발 결국 대신들이 중종반정을 일으켰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중종으로 추대했다.

 

폐위된 연산군은 강화도로 귀향을 간뒤  31살의 젊은 나이(1506년 11월6일)에 생을 마감했다.

실록에는 그가  병사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야사에서는 독살설도 있다.

연산군 부인 폐비 신씨는 신승선의 딸로, 17살이 되던 성종19년 세자빈에 책봉되어  연산군과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지만  연산군이 폐위되자 같은 해 자녀들과 함께 폐위됐으며  1537년 (중종32년) 병사했다.. 연산군의 세자와 창녕대군도 귀향지에서 사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