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소개

이탈리아 요리엔 마늘도, 고추도, 피클도 없다오

올소맨 2008. 2. 24. 15:22


만날 코스메뉴에 피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

한국인들이 흔히 갖는 오해와 진실에 관하여


한국에서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오해는 가지각색이다. 서양이니 당연히 요리가 줄줄이 나오는 ‘코스 메뉴’를 일상처럼 먹을 것이라는 오해가 첫번째다. 시칠리아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먹게 된 첫 식사를 잊지 못한다. 나는 이 사람들이 간식을 먹는 줄 알았다. 레몬즙과 소금을 친 상추 반 그릇과 귀 모양으로 생긴 작은 파스타 오레키에테 한 그릇이 전부였다. 늘 이런 식이었다. 간혹 생선 한 토막이 나오는 날은 특별했다. 난 이들이 남몰래 집에서 배불리 먹고 다녀서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 가봐도 마찬가지였다. 주방장 주세페네 집에서 하루 묵어 가던 날 아침밥은 우유 한 잔과 비스킷 두 쪽이 나왔을 정도니까.

마늘 한 통 슬쩍했다가 들켜버린 사연

또다른 오해는 서양이니까 스테이크를 맘껏 먹겠지, 하는 거였다. 적어도 시칠리아를 포함한 남부 이탈리아와 한국을 비교하면 오히려 한국이 고기를 더 먹는 것 같다. 닭과 돼지고기를 즐기는 것은 한국과 비슷했지만, 양이 매우 적었다. 특히나 피가 뚝뚝 흐르는 거대한 크기의 스테이크는 언감생심이었다. 이네들에게 스테이크는 영국이나 미국식 음식이었다. 우리처럼 작정하고 외식을 할 때나 즐기는 게 스테이크였다.

마지막으로는 이탈리아 요리에 마늘을 많이 쓴다는 오해였다. ‘저동 골뱅이’식으로 마늘 자학극에 가깝게 생마늘을 마구 다져넣어 요리를 만들지는 않겠지만, 어지간히 사용할 것이라고 믿었다. 한국에서 그런 글을 자주 보았고, 마늘과 고추를 주렁주렁 늘어뜨리는 게 한국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로베르토! 너 혹시 마늘 가져갔니?” 부주방장 페페가 나를 부르더니 묘한 눈으로 추궁했다. 어린 녀석에게 망신당할 일이 생긴 거다. 안 그래도 어제 저녁에 마늘 한 통을 슬쩍, 집으로 가져갔더랬다. 당연히 이탈리아 요리는 마늘을 많이 쓰니까 한 통 정도야 없어져도 표도 안 나는 일이 아닌가 생각했던 거였다. 이게 오산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하는 내 표정을 보고 페페가 웃으며 말했다. “일주일에 한 통 쓸까 말까 한 마늘이 없어지면 대번에 안다고. 너 마늘 좋아하는 거 뻔히 알고 있으니 너밖에 더 있어? 큭큭.”

이탈리아 사람들이 마늘을 쓰는 법이 있다. 첫째, 마늘을 쓰는 요리보다 그렇지 않은 요리가 더 많다. 둘째, 향을 우려낼 때 쓰고, 건더기는 꺼내 버린다. 셋째, 다져 넣는 경우 아주 적은 양을 쓴다. 그러니 우리처럼 마늘을 우적우적 씹거나, 다진 마늘을 왕창 넣는 요리법은 없다. 마늘을 썼는지 안 썼는지 희미하게 느껴질 만큼만 쓴다. 파스타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야 마늘 서너 쪽이 기본이고, 볶은 마늘을 함께 접시에 올리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요리법이 되어버린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뿌려 달구고 슬쩍 칼집을 내거나 으깬 마늘 ‘딱 한 쪽’을 넣는다. 마늘 향이 기름이 배어나오면 타기 전에 얼른 마늘을 꺼내 ‘버린다.’

그렇다, 버린다. 마늘은, 그 입자를 먹는 게 아니라 향을 즐기는 향신 재료이기 때문이다. 이게 한국과 이탈리아 사이에 마늘을 쓰는 결정적 차이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노 피클’이라고…

그렇다면, 고추는 많이 쓰지 않을까. 진실을 얘기하면 이건 마늘보다 더 적게 쓴다. 마늘은 어쨌든 상당수 요리에 적게나마 쓰지만, 고추는 평생 한 번도 먹어보지 않는 이탈리아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추를 즐겨 먹는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일 가능성이 짙다. 내 현지 경험으로도 매운 고추가 들어가는 요리는 단 한번도 식당에서 만들어보지 못했다. 칼라브리아 같은 특정 지방에서 즐긴다고들 하는데, 이탈리아가 얼마나 넓은 땅인가를 알면 그것이 전국적 현상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이탈리아 북부에서 시칠리아 최남단까지는 2천킬로미터가 넘는다고.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면 이탈리아 식당에는 ‘피클’이 없다는 사실이다. 로마 역전의 한 허름한 파스타 식당에 붙어 있던 글이 떠오른다. 영어로 ‘노 피클’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 관광객이 너도나도 피클을 달라고 하니, 일일이 대답하기에도 지쳐서 써 붙였을 것이다. 이탈리아에 피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간혹 전채 요리나 고기요리에 곁들임 재료로 쓰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반찬 개념으로 파스타에 곁들여 먹지는 않는다. 한국식 식문화는 반드시 김치나 짠지 조각이라도 있어야 국수를 먹는다. 그러니 미국을 통해 전래된 이탈리아 파스타도 피클을 함께 주기 시작했을 거다.

이탈리아에 있는 대다수 고급 식당은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 내는 음식이 많다. 마치 우리네 옛날 국숫집처럼 면을 뽑아서 파는 생면집도 있지만, 식당의 자존심을 걸고 생면을 만든다. 생면을 직접 만든다고 요란하게 선전하는 한국의 이탈리아 식당이 여럿 있는데, 사실 이게 뭐 대단한 솜씨가 필요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손반죽도 아니고 기계로 반죽하고 뽑아내는 경우라면 특별할 게 없는 파스타가 되곤 한다. 어쨌든 부주방장 페페가 혀를 길게 뽑아 ‘파스타 프레~스카’를 만들자고 알리면, 식당은 분주해진다. 설거지를 도와주는 루치아 아줌마까지 달려들어 밀가루를 붓네, 달걀노른자를 분리하네, 바쁘게 돌아간다.

이탈리아에서 돌아다니는 파스타 교과서에는 생파스타를 만드는 천편일률적인 계량법이 나온다. 밀가루 강력분(이탈리아에는 중력분이 없다) 1㎏에 달걀 10개, 소금과 올리브유 약간이다. 문제는 달걀이다. 크기가 제각각인 그 달걀 10개라는 게 참 계량하기 힘들거니와, 그저 달걀 10개를 넣어서는 맛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이탈리아 요리사라면 비장의 ‘파스타 프레~스카’ 배합법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부주방장 페페의 배합법은 달걀의 노른자를 집중적으로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노른자만 잔뜩 넣으면 반죽의 찰기가 떨어져 삶으면 면이 부서져버린다. 그래서 흰자와 노른자를 적절히 섞어야 하는데, 이게 페페의 비밀이다. 그는 주방 한구석에서 달걀을 배합해서 가져오곤 했는데, 깨진 달걀 껍질 숫자로는 도저히 배합 비율을 알 수 없었다. 그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았다. “할머니가 만드는 마음으로, 밀가루가 원하는 농도로!”

달걀 반죽 만들기의 고난도 기술

나는 하얀 밀가루를 대리석 바닥에 붓고, 가운데 화산처럼 구멍을 판 후 달걀을 깨 넣어 손으로 천천히 저으면서 반죽을 시작했다. 손에 노란 달걀물과 밀가루가 엉겨 진득한 반죽이 시작된다. 그 감촉을 손으로 느끼면서 농도를 조절한다. 그러면서 나는 나만의 배합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밀대로 힘주어 밀었을 때 선명한 노란색의 반죽이 융단처럼 윤기가 반질반질해지고, 고소한 달걀 냄새가 나야 좋은 반죽이었다. 굳이 페페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는 그 비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이래봬도 국수 하면 한가락 하는 민족의 자손이 아니냔 말이다. 칼국수, 비빔국수, 물국수, 호박국수, 멸치다시국수, 수제비 …. 파스타와 국수는 사촌인 게 분명했다. 할머니의 마음으로 빚어야 제 맛이 나는 걸 보아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