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만의 폭우와 백년하청
후한 선제 때에 병길(丙吉)이란 승상이 있었다.
하루는 병길이 수레를 타고 입궐을 하는데 저잣거리에서 큰 싸움이 나 사람 여럿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부가 "수레를 멈출까요?"하고 물으니 병길은 "그냥 가자"고 했다.
그렇게 한 참을 가다가 짐수레를 끌고 헐떡이며 오는 소를 보자 병길은 마부에게 수레를 멈추라고 명하고 수레에서 내려 소의 주인에게 "소가 몇 리를 왔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수행하던 관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승상께서는 아까 사람이 여럿 죽어나오는 싸움터는 그냥 지나치시더니 헐떡이는 소를 보고 수레에 내려 물으시는 이유는 어찌 된 일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병길은"저잣거리의 싸움이야 장안령이나 경조윤(오늘날 치안담당 부서)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아직 이른 봄인데 몇 리를 걷지도 않는 소가 헐떡거린다면 올해 기상이 예전과 다르다는 이야기이니 이는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게 치명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일은 마땅히 내가 챙겨야할 일이다"하고 대답하니 수행관리가"과연 명재상이십니다."하고 탄복을 했다한다.
사흘을 연이어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에 대해 대통령은 “기후의 변화가 무섭기는 무섭다”고 했다. 옛날 나라님 같으면 "과인의 부덕의 소치로 나라가 이 지경에 빠졌나이다."하며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드려야하고, 대신들은 "전하를 보필하지 못한 죄가 크옵니다."하며 줄줄이 사직상소를 올려도 시원치 않을 형국이다. 옛 사람들의 나라를 다스리는 자세가 이렇다 해서해서 오늘날 천재지변을 지도자들의 부덕의 문제라고 뒤집어씌울 생각은 없다. 다만 똑같은 유형의 반복되는 재해는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인재(人災)이기 때문이다.
일 년 전 쯤 추석연휴에 물 폭탄이 쏟아져 광화문일대가 물바다가 되었을 때 몇 곳에 글을 보낸 적이 있다. 연 사흘 지겹게 내린 비에 대해 몇 자 써볼까 생각해 다시 그 글을 찾아 읽어봤다.
그런데 그날 아침 대통령 부부가 TV 아침프로에 나와서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 말고는 당초에 비가 30mm 정도 내린다던 기상청의 예보나, 겉치레만 하는 서울시의 재난행정이나, 재난 주관 방송사의 안일한 대응, 누리꾼들이 트위터에 올린 자료를 출처 없이 퍼다 쓰는 얌체 언론사들의 행태에 이르기까지 더 보태고 빼고 할 것도 없었다.
서울시는 작년에 수해가 났을 때 하수행정의 불비로 인한 인재라는 각계의 지적에 대해 백년만의 천재지변이었다면서 불가항력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일 년 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번엔 광화문 뿐 아니라 강남역 부근과 우면산 일대는 물론 서울 전 지역이 피해를 입었다.
시민단체들은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 재난예산의 90%이상이 잘려 나갔으며 재난예산은 서울시가 그동안 한강 공원 조성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것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수해로 “서울에 베네치아 워터파트를 건설한 오세이돈 시장”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는 오 시장은 유구무언 처지가 됐다.
물론 재난예산을 많이 세운다고 해서 재난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 예산편성을 들여다보면 오 시장의 재난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읽을 수는 있다. 그런 안일한 인식이 인재로 이어진다. 사실 오 시장이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주민투표에 기울였던 관심의 반만이라도 재난행정에 기울였더라면 사태가 이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7월초 강남역 부근이 침수 되었을 때 서울시는 “일부 누리꾼들이 합성사진으로 선동을 한다. 강남역이 침수가 될 정도 구조는 아니다”는 등 발뺌하기에 급급했지만 이번 수해로 모든 것은 여실히 증명됐다. 하긴 오 시장의 트위터 계정을 들여다보니 팔로워는 8077명이지만 정보를 받을 수 있는 팔로윙이 고작 4명이고 더구나 트윗에 글을 쓴 적 없다하니 누리꾼들과 소통을 했으면 얼마나 소통을 했겠는가?
방송사의 재난 방송도 시스템도 SNS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는 “이번 재난방송에 기자들이 위험으로 사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할 때 시민들의 제보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SNS에 손을 든 셈이다. 이제 스마트폰으로 일인 미디어 세상이 열린 만큼 1분 1초를 다투는 위기의 상황에서 방송사들은 거대한 방송장비에만 의존하는 재난방송 시스템의 개편을 고려해야한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SNS 자료들을 분석하고 사실로 인정 돼 채택돼 방송된 동영상이나 사진의 출처를 명확하게 표시해 주고 그에 대한 응분의 고료도 지불해야 한다. 한 사람의 귀한 생명이 달린 재난상황에서 공중파 방송사의 폼 따위를 고려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느 축제 기획가는 축제를 기획할 때 화장실 설치를 식당 설치보다 우선한다. 몸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몸에서 나오는 것이 더 더럽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이 기획한 축제에 가보면 어딘지 깔끔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도 마찬 가지다 겉치레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수관이 중요하다. 대장암이 걸린 사람이 얼굴에 분칠만 하고 있다 해서 예뻐 보일 리 없고 무덤에 회칠을 했다고 해서 무덤이 아름다울 리 없다. 누리꾼들이 일본 도쿄 지하 배수처리장 사진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 황하의 물은 항상 누렇다. 이를 두고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백년을 기다려도 깨끗해 질 리가 없다는 말이다. 물난리가 날 때 마다 100년만이니 101년만이니 하고 에둘러 댈 일이 아니라, 기왕 이렇게 된 거 서울시의 재난행정이 백년하청이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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