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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시대

올소맨 2011. 2. 4. 13:32

의인의 시대





홍문종/경민대 총장,시민일보 회장


 



며칠 전 언덕을 구르는 통학버스를 몸으로 막다가 참변을 당한 한 기사님의 의로운 선행이 있었다. 그의 희생으로 20여명의 인명은 무사했으나 정작 자신은 목숨을 잃고 만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의 의로운 행적이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많은 이들이 추모의 염으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고 있는 분위기다.



‘살신성인’ 통학버스 운전사에 추모 물결

동아일보 '인물' | 2011.01.21 03:37

당시 김 씨는 25인승 통학버스를 타는 학생들을 태우고 있었다. 이미 버스 안에는 2학년 학생 8명이 타고 있었다. 김 씨가 학생 한 명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 버스가 비탈길(경사 7도)로 굴러가기 ...

 



앞서 일본에서 유명을 달리한 아름다운 청년 故이수현군의 삶도 비슷하다.

2001년 1월 26일 일본 유학 중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만 故 이수현군의 안타까운 사연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술이 취해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해내다 참변을 당했는데 그 때 그는 스물여섯 나이에 불과했다.


이수현씨 추모열기"일본은 당신 잊지 못합니다" 다음 블로그 | 2011.01.27

[이성대/고 이수현 씨 아버지 : 수현이가 못다한 한일 교류의 꿈을 미력하나마 힘써 나가겠습니다.] 그의 이름을 건 장학기금에 기부해 온 일본인은 지금까지 1만여 명, 480여 명의 학생들이장...

 


그의 희생은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삶에 익숙해있던 당시 일본사회를 각성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많은 일본인들이 감사의 눈물로 그의 삶을 기렸다. 일본 내에 ‘이수현 장학회’가 설립되는 가하면 그의 삶을 조명한 영화 ‘너를 잊지 않을거야’가 한일 합작 영화로 제작되는 등 그를 추모하는 각종 행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살신성인하는 모든 의로움은 우리에게 있어 시공간을 초월한 기운을 품은 영원불멸의 아우라의 흔적이다.
무엇보다도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귀한 가치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고 기록해서 후대에 계승하고 기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제 명을 다하지 못했지만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을 이들의 의로운 삶이 새삼스럽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명제를 되짚어보게 한다.

톨스토이는 동명의 소설집을 통해 인간의 지위나 부, 권력의 덧없음을 말하는 대신 절대절명적인 ‘사랑’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그들의 삶을 어우르며 절대적 구심체가 되고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사랑에 의해 살아가되 개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된 동력을 통해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

그는 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건 무엇이고 죽는 건 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이 되는 건지 하루종일 내 머리 속을 맴돌며 혼란스럽게 하는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다.

결국 언젠가 죽게 돼 있다면 그 기간이 30년이든 40년이든 아니면 100년이든 영겹의 세월로 흘러온 인류의 역사성을 생각한다면 굳이 아등바등 거릴 필요도 없지 않을까, 정말 그렇다면 의미있는 삶이나 죽음의 명제에 무슨 무게나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론에 골머리가 썩히고 있는 중이다.

내 자신 스스로의 세계이기에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한다는 결론을 깨달으면서도 그런들 영겁의 시간 속에 한 점 티끌의 존재로 소멸되어질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은 체념이 빠르게 교차하는 갈등의 연속이다.

아무리 좋은 집이나 옷, 음식이 있다한들, 금력, 권력, 명예가 넘친다 한들, '수명‘의 한계 앞에서 모든 게 신기루가 되고 만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정황을 부축이고 있다.

문득 ‘온 세상을 얻고도 내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 내가 바로 우주이고 세계가 내 안에 있다’는 성경의 의미가 좀 더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의문투성이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뭔가 실행되는 그 순간, 의인의 필요충분조건만큼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규명돼야 하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왜 그랬는지가 중요하다기 보다 그 순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주저함 없이 해냈다는 사실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설정이다.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의인을 기리고 존경하며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존재할 때 삶의 길이와 상관없이 더불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제가 10주기 추모일이었는데 10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뜨거운 마음으로 이수현님의 선행을 기리는 분위기였다는 소식이다. 특히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그 열기가 더 뜨거웠다는 후문이다.

한 사회나 국가적 삶의 품격은 그에 속한 구성원들이 선하고 의로운 일에 어떤 식의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높은 점수로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삶의 품격을 평가하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우리보다 더 열성적으로 이수현님에 대한 추모열기를 이어가는 일본의 저력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선진국민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데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부의 척도보다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작은 일이라도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일을 한 한사람 한사람을 잘 기억해 내고 감사하고 롤 모델로 삼고 하는 일들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의인이 관리되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보자는 소리다.

선진사회일수록 의인이 대접받는다.

우리 사회에 의롭고 선한 일들을 확산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들의 삶이 부디 쓸쓸하지 않게 되길...



 



남 구하고 자신은 불행해진 ‘의인’들
생활고에 허덕이는 의사상자, 정부?사회 모두 외면…우울증과 가족 불화로 가정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1055호] 2010년 01월 06일 (수)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1. 2008년 5월 조병남씨는 경기도 여주군 친구의 집에 가스가 폭발하면서 화재가 발생하자 불 속으로 들어가 친구를 구하려다 전신 화상을 입고 지체 4급, 안면 3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2. 환경미화원을 돕다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상해를 입은 김동필씨가 다친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박은숙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다 목숨을 잃거나 다친 의인들을 ‘의사상자’(義死傷者)라고 부른다. 정부가 금전적인 지원을 실시한 1970년부터 지금까지 총 5백76명이 의사상자로 인정받았다. 이 중 3백85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1백71명이 부상당했다. 의사상자에게는 등급(1~9등급)에 따라 1천만~1억9천7백만원까지의 보상금이 지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상자들은 사고 이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의인들의 삶은 한마디로 비참했다. 이들 대부분은 사고 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삶에서 멀어져 있다.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는가 하면 우울증과 불화로 가정 파탄에 이른 경우도 많았다.

‘한국의사상자협회’ 설립을 준비 중인 양용구씨(47)는 “의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각본을 짠 것처럼 하는 말들이 똑같다. 비참한 세상살이로 후회와 한숨만 남았다”라며 씁쓸해했다. 지난 2003년 8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양씨의 아들은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해낸 뒤 자신은 웅덩이에 빠져 사망했다. 양씨의 아들은 의사자로 인정받았지만, 양씨는 우울증 등을 겪으며 하던 개인 사업까지 접어야 했다.

어선 선장이던 박성원씨(59)는 지난해 4월 퇴근길에 불에 타고 있는 차량 옆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여성을 발견하고 돕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박씨는 한쪽 눈을 잃었고, 다리도 심하게 절게 되었다. 두 번 뇌수술을 하며 기억력도 나빠져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이 사고로 박씨는 꼬박 여섯 달을 병원에서 지냈다.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은 7천8백만원. 하지만 병원비를 낸 후 박씨 손에 남은 것은 3천만원 정도였다. 후유증에도 시달렸다. 신경질이 부쩍 늘어 부부 싸움도 잦아졌다.

박씨의 아내 김삼순씨(59)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해 하루하루를 눈물로 지낸다고 했다. 김씨는 “사고 전에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연봉도 4천만원이 넘었고, 가정에 충실한 1등 신랑감이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큰소리로 짜증을 내고, 심지어 욕도 한다. 속으로 삭이다 보니 스트레스성 안면악관절 장애까지 생겼다”라며 힘들어했다.

가정의 근간이 흔들리며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사는 의인들도 있다. 지난 1995년 12월, 택시기사였던 최광석씨(54)는 강도가 운전하는 버스를 택시로 가로막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최씨는 당시 1천2백9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몸이 아프고 돈도 없어서 택시를 팔아야 했다. 최씨가 사고를 당하던 해에 그의 아내는 위암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투병 중이다. 가족 간의 대화도 끊긴 지 오래다.

 

의사상자 개선안 나왔지만 예산 못 받쳐줘

최씨는 “그동안 의상자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 1종 의료급여 카드를 꺼내면 ‘왜 1종 의료급여 혜택을 받느냐’라고 묻기 일쑤이다. 의사상자는 국가유공자와 달리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이 나오지 않아 증빙 서류를 내보여야 한다. 꾸깃꾸깃한 종이 서류를 내보이다 보면 내가 마치 구걸하러 온 사람 같다는 기분이 든다”라고 말했다. 

개인 사업을 하던 남영식씨는 지난 2005년 2월 퇴근하는 도중에 “강도야!” 하는 소리를 듣고 강도와 대적하다 칼에 찔려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남씨는 당시 사건을 맡은 경찰관에게 “병원비는 어디서 보상받느냐”라고 물었다가 “피의자인 강도에게 받을 수밖에 없다”라는 어이없는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 나중에 검찰에 가서야 ‘의사상자’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씨는 어렵게 6천7백만원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당시 상황이 떠올라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건 당시 다리를 크게 다친 탓에 육체 노동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남씨에게 더 큰 짐은 아이들 교육이다. 지금은 정부 지원금으로 중학생인 두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이마저도 대학생이 되면 중단된다. 남씨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의사상자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생활고이다. 의사상자들은 “혜택이 없어도 너무 없다”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정부는 의사상자에게 보상금과 1종 의료급여, 자녀 교육, 취업 보호 및 장제 보호 혜택을 주고 있다. 의사상자 대부분이 보상금은 병원비로 날리고, 취업 보호는 말 뿐이다. 태반이 실업자로 살아간다.

권혁녀씨(42)는 지난 1999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다가 남편을 잃었다. 권씨는 최근 경기도 안산시가 실시한 환경미화원 채용 2차 심사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현재 의사상자가 평생 받는 혜택이라고는 1종 의료급여가 전부이다. 만약 국가유공자처럼 가산점만 있었어도 환경미화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라며 울먹였다. 

조병남씨(53)는 지난해 5월, 가스폭발 사고로 화재가 발생하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가 전신 화상을 입었다.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쓰고 있는 조씨는 “노후는 자식들에게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며 씁쓸해했다.

지난 1995년 환경미화원을 돕다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은 김동필씨(38)는 의사상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김씨는 최근 복지부에 의사상자에 대한 심사 조건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보건복지가족부측은 “급박한 위해에 있는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요건이다. 이것마저 없으면 할머니를 부축하다가 발이 삐끗한 것조차 정부가 지원해줘야 할 판이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국민권익위원회는 2009년 12월23일 의사상자에 대한 개선안을 내놓았다. 자녀 교육을 대학까지 지원하고, 의상자 본인에 한해 지원되던 의료급여를 가족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 사회서비스자원과 관계자는 “의상자 가족들에게 2종 의료급여를 지급하는 정도의 일부 수용만 가능하다. 취업 보호는 역차별 소지가 있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혜택을 달라는 의사상자의 요구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의사상자들이 찬밥 신세라면 해외에서 숨진 한국인 의인들은 어떨까. 지난 2001년 일본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다 사망한 이수현씨는 일본에서 국민적인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이씨를 추모하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일본 왕이 시사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매년 1월26일에 이씨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고 이수현씨의 아버지 이승대씨는 “남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행위는 우리 특유의 민족성이다. 국가 차원에서 이들을 보호하고 배려해야 좋은 일이 자꾸 퍼져나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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