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좋은글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올소맨 2008. 3. 15. 05:50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詩 * 이정하

'좋은시·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의 인연이란  (0) 2008.03.17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엔  (0) 2008.03.15
바다에 가지 않아도  (0) 2008.03.15
친구  (0) 2008.03.15
마음에 드는 사람과 걷고 싶다  (0) 2008.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