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으로 가지 않고 지옥으로 가고 싶네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유명인들의 생가를 잘 보존해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도 그럴 필요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란 개발이란 명분 아래 문인이나 예술인들의 문화재를 소홀히 한 게 사실이니까요.
요즘은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 설립을 두고 설왕설래하기도 합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히 취급될 필요는 없겠지만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지는 의문입니다. 아무래도 정치적인 의도가 있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이 자신이 죽거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헐어버리라는 유언을 남겨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그가 왜 그런 말을 하였을까요? 그건 자신의 집을 남겨 둠으로써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소박한 생각이었습니다.
선종의 조주 선사도 제자가 영정을 그려 바쳤을 때 “저것이 나라면 불태워 버리게”란 말을 남겼답니다. 정신세계가 높은 곳에 있는 분들은 자신의 자취를 남기는 걸 원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편해 하는 것 같습니다.
어린 사람들이 나이가 든 어른들에게 배움을 얻는 것처럼 어른들은 먼저 세상을 살았던 선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세상을 사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선사들이 입적을 할 때 남긴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책의 제목은 ‘적멸의 즐거움’이며 선사들의 입적과 임종게란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저자는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데뷔한 정휴 스님입니다. 스님은 1,701명의 선사들이 등장하고 입적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전등록을 읽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책에는 ‘천당으로 가고 싶지 않고 지옥으로 가고 싶네.’등 모두 22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되는대로 이 중 좋은 글 몇 편을 골라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리겠습니다.
(책 속으로)
1.적멸의 즐거움
중국대륙을 통치하던 모택동 주석이 임종이 가까워지자 유언하기를 자신이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 시신을 불태워 재를 고향 산천에 뿌려 달라고 유언을 했다. 등소평 역시 무덤을 쓰지 않고 그의 시신을 불태워 재를 그가 생전에 가꾸던 정원과 양자강에 뿌려 화제가 된 일도 있다. 우리나라 선경그룹의 최종현 전 회장도 호화무덤을 쓰지 않고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겨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죽음은 생의 종말이 아니라 법신의 탄생이다. 육신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흙으로 돌아간다. 수행을 통해 깨우친 사람일수록 육신을 산과 들에 버릴 부스럼 딱지처럼 여겼을 뿐이다.
2.이 몸 벗고 근원으로 돌아 가네
삶과 죽음을 합일하여 초월해 있는 사람은 선사들만이 아니었다. 가톨릭신부들도 해탈의 여유가 있었다. 특히 요한 23세는 임종이 다가옴을 느끼고 성탄절날 이렇게 말했다.
“오늘로 나는 여든 두 살에 접어든다. 이 해를 넘길 수 있을까. 어느 날이고 태어나기 좋은 날이고 죽기 좋은 날이다.”
그는 죽기 좋은 날 친구들이 우는 것을 보고 성모 마리아 찬가를 불러달라고 하면서 “힘을 내! 울 때가 아니야. 지금은 기쁨과 영광의 순간이야”라고 말한 후 의사를 향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여행가방은 이미 꾸려 놓았습니다. 떠날 순간이 오면 지체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후 임종했다고 한다. 누구나 지극한 마음으로 자신을 비우고 있으면 죽음의 순간일지라도 이처럼 아름답고 초월적 여유가 있는 법이다.
3.천당으로 가지 않고 지옥으로 가고 싶네
일생 동안 살아오면서 맺은 인연을 원래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일체 속박을 만들던 욕망을 버리고 나면 자신만 홀로 남는다. 신령스런 자성만 홀로 있게 되면 나고 죽음에 걸릴 것이 없고 생사에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지옥과 천당을 분별한 이유가 없다.
오늘은 유월 육일
나 곡천은 죄를 톡톡히 받았으니
이제 천당으로 가지 않고
지옥으로 들어가리라.
곡천선사의 역설은 극락과 천당에 집착해 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는 천당으로 가는 길이 보이고 있지만 스스로 지옥으로 가겠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의 자성은 지옥과 천당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서)
책에 나오는 선사들은 육신을 몸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거추장스러운 옷처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종을 맞이해서도 크나 큰 동요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나 봅니다. 장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내의 죽음을 오히려 축하를 해 줍니다. 그리고 해골과의 일화를 통해 죽음을 미워하던 사람이 죽은 뒤에 비로소 살던 때를 후회한다고 말하여 죽음이 사는 것보다 즐겁다고 한 것이 장자입니다.
인생수업의 저자 로스 박사도 죽음의 순간에 세단계가 있다고 설명하며 고치와 나비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은 나비가 고치를 벗어날 때의 현상과 똑 같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잠시 살기 위한 집에 불과하기 때문에 육신이 참자아가 아니라고 합니다. 고치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이 회복불가능의 상태가 되면 고치를 버리고 나비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당신이 반드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고치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삶의 시작되는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과연 죽은 이후의 생은 어떤 모습일까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시원한 답을 구할 수 없습니다. 죽어 봐야 알겠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니까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죽음은 두려움 때문에 입에 올리기 싫어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 죽음의 실체를 알고 나면 죽음은 실상 그렇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며 죽음보단 오히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
- 李 御 寧 -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액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서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
시장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만 더 나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겁 없는 자들의 키가 한 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의 나락입니다
非常은 飛翔이기도 합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친 서민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십시오
주눅 들린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비행을 가르쳐 주시고
진흙 바닥의 지식인들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날개를 보여 주소서
날게 하소서
뒤쳐진 자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설빔을 입지못한 사람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학과 같은 날개를 주소서
그리고 남남처럼 되어 가는 가족에게는
원앙새의 깃털을 내려 주소서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를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 가며
대열을 이끌어 간다는 저 신비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어느 소설의 마지막 대목처럼
지금 우리가 외치는 이 소원을 들어 주소서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
'좋은시·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글 (0) | 2011.02.20 |
---|---|
인생 지침 (人生 指針) (0) | 2011.02.17 |
옛날 옛적 소돔에선 (0) | 2011.02.06 |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와 입양(入養, adoption) (0) | 2011.02.04 |
새해에 덕담 한말씀 하세요 (0) | 2011.02.02 |